퀵샌드와 늪 사이에서

멈춰야 빠져나오는 땅, 떠나야 건너갈 수 있는 땅

by 봄울


안광복 목사님의 책(SEED STORY)에서

처음 퀵샌드라는 비유를 읽었을 때,
나는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퀵샌드는 애쓸수록 더 깊이 빠진다.
살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오히려 지면은 더 무너진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힘을 빼는 것, 그리고 멈추는 것.


그 비유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도 분명,
더 애쓰지 말아야 빠져나올 수 있는 순간들이 있겠구나.


우리는 보통 어려움을 만나면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힘을 내고, 조금 더 버티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 믿음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익숙한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너진 것 같고,
분명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발밑이 사라진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닐까.
내가 더 단단하지 못해서, 더 지혜롭지 못해서
이 상황에 빠진 건 아닐까.


하지만 퀵샌드는,
사람이 약해서 빠지는 곳이 아니다.
그저 땅의 성질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퀵샌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또 다른 형태의 위험한 땅이 있다.
바로 늪이다.




늪은 퀵샌드처럼 갑작스럽지 않다.
처음부터 조금 눅눅하고,
조금 불안정하지만, 당장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그 위에 오래 머문다.


늪에서는
“괜찮아, 아직은 버틸 만해”라는 말이 반복된다.
크게 아프지 않고, 크게 실패하지도 않는다.
그저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늪의 문제는 공포가 아니라 소모다.
눈에 띄는 위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계속 혼자서 버티려 한다.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고,
조금만 더 견디면 나아질 것 같아서.


하지만 늪은
의지로 건너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 필요한 것은 결심이 아니라
지지대다.


붙잡을 나무, 함께 건너는 사람,
혹은 그 자리를 떠나도 된다는 허락.




생각해보면,
인생의 어려움은 모두 같은 얼굴로 오지 않는다.

어떤 시기는 퀵샌드 같다.
갑작스러운 사건, 예상치 못한 평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감각.


이때 필요한 것은
더 애쓰는 힘이 아니라, 멈추는 용기다.


반대로 어떤 시기는 늪 같다.
큰 문제는 없지만 회복되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는데 점점 지쳐간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혼자 견디는 성실함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용기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를 자주 혼동한다는 데 있다.

퀵샌드 앞에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늪 한가운데서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을 고립시킨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다치고,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문다.

혹시 요즘 당신이 힘든 이유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서 있는 땅의 성질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이 퀵샌드라면
잠시 멈춰도 괜찮다.
힘을 빼도, 실패가 아니다.


지금이 늪이라면
혼자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
도움을 받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더 큰 결심으로 통과할 수는 없다.
어떤 순간에는
방향보다 먼저, 지형을 읽는 일이 필요하다.


퀵샌드와 늪을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자신을 탓하며
조금 더 안전하게 삶을 건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다시 새로움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