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너무 길어질 때, 바다는 숨을 멈춘다
피해 규모, 침수 지역, 멈춰 선 일상.
뉴스 속 태풍은 언제나
피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알게 되었다.
태풍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순환을 다시 돌리는 힘이라는 사실을.
태풍은 거대한 믹서기처럼
공기를 섞고,
바다를 뒤집고,
정체된 흐름을 깨뜨린다.
바다는 겉보기엔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숨 쉬어야 사는 존재다.
너무 오래 고요하면
표면과 깊은 층이 분리되고
영양분은 가라앉고
생명은 점점 힘을 잃는다.
태풍이 오면
심해의 영양염류가 위로 올라오고
플랑크톤이 늘어나며
바다는 다시 살아난다.
고요는 평화처럼 보이지만
자연에게 고요의 지속은
서서히 죽어가는 상태이기도 하다.
공기도 마찬가지다.
태풍은 오염된 공기를 흩뜨리고
정체된 대기를 섞는다.
그래서 태풍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말한다.
“공기가 달라졌다.”
그건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숨이 다시 트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태풍이 다르게 보였다.
태풍은
부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기 위해 온다.
그때 문득
사람의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눌러두고
아무 일 없는 척 살 때,
관계 속에서
말하지 못한 것들이 쌓일 때,
마음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쪽에서는 점점 숨이 막힌다.
그러다 어느 날,
울음이 터지고
분노가 새어나오고
관계가 흔들리고
삶의 구조가 바뀐다
우리는 그 순간을
‘폭풍’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태풍처럼
그 감정의 폭풍도
삶을 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다시 순환시키기 위해
지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말하지 못했던 말이 나오고
눌려 있던 감정이 섞이고
정체되어 있던 관계가
다시 숨을 쉰다.
아프지만,
지나가고 나면
이상하게 이런 말이 남는다.
“그래도… 숨은 좀 쉬어졌다.”
어쩌면 감정의 폭풍은
삶의 공기 정화이고,
관계의 순환 버튼이며,
마음이 더 썩지 않기 위한
최후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태풍은 여전히 무섭다.
감정의 폭풍도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반드시 좋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파괴인 줄 알았는데,
순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