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별

믿음 이전에,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에 대하여

by 봄울

성탄 예배를 드리다가
문득 동방박사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던 사람들이었다.


매일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의 움직임과 질서를 읽어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낯설고 큰 별 하나가
한 자리에 머물러 보였을 것이다.


늘 흐르던 하늘 속에서
유독 멈춰 있는 빛.


그 별은 분명
그 시대, 그 장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눈에도 보였을 것이다.


밤하늘 아래 있던 목동들의 눈에도,
예루살렘 성 안을 오가던 사람들의 눈에도
같은 별이 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멀리 떨어져 있던 별의 전문가들만
그 별을 의미로 읽어냈다.


나는 이 지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보이는 것은 아니고,
멀리 있다고 해서
느낄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동방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그저 신기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 가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다.


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막의 길.
그들은 분명
지도를 펼쳐 놓고 거리를 가늠했을 것이고,
시간과 계절, 위험과 비용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없이 논의했을 것이다.


“정말 갈 가치가 있는가.”


그럼에도 결국
그들은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들고 온 것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다.


왕에게 드리는 것,
제사장에게 바치는 것,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는 이를 위한 것.


아기를 만나러 가면서도
그들은 이미
그 삶의 무게와 끝까지를
어렴풋이 내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별을 발견한 그 시간이
마리아가 천사를 만난 시간과
어딘가에서 겹쳐 있지는 않았을까.


한쪽에서는
말씀이 잉태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말씀을 향한 여정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신앙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믿고 있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사인을 보내셨다.


그래서 그 별은
믿는 자에게만 보이는 표적이 아니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

열려 있던 신호였던 것 같다.


아기 예수께 경배한 뒤
그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성경은 말한다.
그들이 “다른 길로 돌아갔다”라고.


나는 그 말이
지도 위의 길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들은 돌아가서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그 별이 있던 곳에
정말로 아기가 태어났어.”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지켜보자.”


그들은 예언자가 되지 않았고,
설교자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본 것을 말하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성탄절 예배를 드리며
나는 조용히 이런 질문을 마음에 남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별을 따라
얼마만큼의 거리를 걸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