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의 상처는 어떻게 풍경이 되는가
요르단에 있었을 때,
아르논 골짜기, 와디 무집을 바라보며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었다.
가파르게 갈라진 협곡,
층층이 드러난 암석의 결,
오래전 땅이 한 번 크게 다쳤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진은 땅의 상처이고,
이 골짜기는 그 상처의 흔적이다.
우리는 상처를 두려워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흔적을 찾아다닌다.
과거에 화산이 폭발했던 곳,
운석이 떨어졌던 자리,
지층이 갈라져 단층이 드러난 협곡.
그곳들은 모두
한때는 재앙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공포였고,
무너짐과 상실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그 자리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지진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픔은 결코 아름다운 사건이 아니다.
다만,
아픔이 시간을 지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남았을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와디 무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땅이 덜 아팠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픔이 지워지지 않고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평평했다면 보이지 않았을 지층,
금이 가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결,
흔들리지 않았다면
끝내 알 수 없었을 깊이.
지진은 땅을 부수었지만,
동시에 땅의 내부를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
사람도 그런 순간을 지나온다.
한 번의 큰 흔들림 이후에야
비로소 자기 안에 어떤 결이 있었는지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때의 우리는
여전히 상처를 안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상처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게 된다.
대신,
그 자리에 머문다.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가도록 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 자리를 보며 말한다.
“여기, 참 깊다.”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지진은 사라져서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기 때문에
의미가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