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

마음의 상태는 삶을 움직인다

by 봄울

그 시절, 나는 하루 종일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하루 최소 200통.
받지 않는 전화도, 끊기는 전화도, 차갑게 거절당하는 전화도
그냥 숫자로 기록해야 하는 일상이었다.


매 시간마다 몇 통을 걸었는지 보고해야 했고,
가능성이 있는 전화가 몇 건인지 분석해야 했고,
저녁이 되면 그 모든 걸 다시 일일보고서로 정리해야 했다.
업무 태도, 문제점, 반성, 개선 방향.


말로는 “잘해보자”였지만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일이었다.

누구와도 오래 대화할 수 없었다.
같은 팀끼리도 2인 이상 모이면 안 된다는 지시.


그저,
침묵 속에서
각자 마음을 꽉 잡고 버티는 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그렇게 마음이 점점 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옆 팀의 직원이 아주 조용하게 말을 걸었다.


“교회 다니신다면서요…?”
“네.”
“기도모임이 있는데… 같이 하실래요?”


그 말 한 문장이

그날의 나를 간신히 붙들었다.

기도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한 뒤, 작은 카페나 피자집 같은 곳에서 모였다.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 주의 힘들었던 감정을 말하고,
그걸 조용히 들어주고,
그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말이 서툴렀고
기도가 어색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그곳에서는
실적이 중요하지 않았다.
보고서도 필요 없었다.
잘 보이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존재하는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숨이 되어주었다.

그 모임을 이끌던 분은
실적도 좋고, 신앙도 깊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음식들을 직접 준비했고
계약이 없어서 마음이 말라 있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하고 있는 거예요.”


그 말들이
그 시절의 나에게 숨이었다.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한다.


“하루에 200통의 전화보다
마음 하나를 붙들고 살아가는 게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귀한 거예요.”


그 말 안에서 나는 잠시 쉬었다.

조용히 울던 마음이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은
몸을 먼저 움직이게 하지만,
삶을 진짜로 움직이는 건 마음의 상태다.


마음이 무너지면
속도를 아무리 내도 앞으로 가지지 않고,
마음이 살아 있으면
아주 천천히 가도 결국 도착하게 된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마음이 살아있는 삶이다.


비록 아주 작고, 아주 연약하고, 아주 느리더라도

마음이 있는 방향으로 걷는 삶.


그 모임은
그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는
작은 등불 같은 시간이었다.


기도는 아주 작은 숨이었지만, 그 숨이 나를 살렸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