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미루기
오늘의 악마는 미루기였다.
그 녀석은 아침부터 내 귀에 속삭였다.
“지금 말고, 나중에 해도 되잖아.”
그 말이 참 설득력 있었다.
나는 세수도, 청소도, 메일 답장도 미뤘다.
그리고 결국 하루를 미뤘다.
미루기는 늘 다정하다.
“지금은 좀 쉬어.”
“기분 좋을 때 하면 더 잘 돼.”
늘 내 편인 척하며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속는다.
쉬자고 해놓고, 결국 쉬지도 못하게 한다.
머리는 걱정하고, 마음은 자책한다.
미루기는 나를 쉬게 하지 않으면서,
쉬고 있다는 죄책감만 남긴다.
점심쯤, 미루기는 내 옆에 앉았다.
커피도 시키지 않고,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왜 이렇게 조급해? 세상은 어차피 돌아가.”
그래서 나는 잠시 진심으로 안심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한 평화였다.
조용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평화.
퇴근길,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단 한 가지만 하자.”
그래서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이 문장 한 줄을 썼다.
“오늘의 악마는 미루기였다.”
이 짧은 문장을 쓰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의 공기가 맑아졌다.
미루기는 내일도 찾아올 것이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말하겠지.
“어제 했잖아. 오늘은 좀 쉬자.”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미루기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녀석보다 10분만 먼저 움직이면 된다는 걸.
오늘의 나는 그 10분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그게,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