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디아스포라의 신앙 ― 흩어진 자리에서 자라는 믿음
침례교단이 운영하던 한 학교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교단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건,
그곳이 초교파 예배의 자리였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오든, 어느 교회 출신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함께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었다.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언제나 식탁으로 향했다.
그 식탁은 늘 사랑의 현장이었다.
매주 여선교회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비빔밥 재료 한 가지씩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고추장은 가장 귀한 보물이었고,
그 향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고향의 맛을 느꼈다.
그 자리에는 유학생, 주재원, 선교사, 여행자,
그리고 잠시 한국이 그리워서 찾아온 사람들까지 있었다.
모두가 한 끼를 나누며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를.
혼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나에게,
그 식탁은 공동체의 품이었다.
우리는 밥을 나누며 믿음을 나누었다.
매년 열리는 바자회는 또 다른 축제였다.
각자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모으고,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
김밥, 전, 떡볶이, 잡채, 육개장, 양념치킨, 돈가스, 만두 …
그 향만으로도 사람들의 발길이 모였다.
그 수익금은 고스란히
요르단에 있는 난민 가정을 돕는 데 쓰였다.
우리는 그 돈으로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식용유, 밀가루, 설탕, 샤이(차)를 사고
직접 가정방문을 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무슬림이었고,
우리와 믿음이 달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경계를 넘어
사랑으로 연결되는 길을 열어주셨다.
문을 두드리면
환한 얼굴로 맞아주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의 집은 작고, 가구는 오래되었지만
그곳엔 생명이 있었다.
우리는 음식을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고 기도했다.
그 기도는 그들의 종교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닿는 순간이었다.
그 만남이 끝나면
나보다 오히려 그들이 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신이 당신을 축복하길 바랍니다.”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다.
우리가 준 것은 작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은 컸다.
이 모든 일은 거창한 계획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그저 “작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 하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마음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셨다.
그 시간들을 나는 감사히 기억한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아도,
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그 나눔이 곧 우리의 예배였다.
요르단의 그 식탁,
그 바자회,
그 가정방문 속에서 나는 배웠다.
신앙은 흩어진 자리에서도 자랄 수 있다는 것.
교회당이 없어도,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아도,
사랑이 있는 곳엔 하나님이 계셨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비빔밥 냄새를 기억한다.
그 냄새 속에는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셨던 흔적이 스며 있다.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맛이었다.
“하나님은 흩어진 우리를 통해
이방의 땅 한가운데에서도
사랑의 식탁을 차리셨다.
그리고 그 식탁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