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돌아가는 길 위에서 ― 끝까지 보냄 받은 자로
요르단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 된 한 지인이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내게 제안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와 함께 요르단의 성경 유적지를 다녀보면 어떨까요?”
그 말은 내게 너무 특별한 초대였다.
그가 운전을 맡았고,
나는 일정을 짜고
부부가 된 두 사람에게
요르단의 성경의 땅을 직접 안내해 주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게
“이제는 네가 이 땅과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야.”
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다.
그 시간은 나에게 요르단과의 이별여행이었다.
예수님의 세례터와 모세가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던 느보산,
엘리야가 걸었던 길,
세례요한의 흔적이 남은 마케루스.
그 모든 장소가 다시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때가 마침 ‘사스(SARS)’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어야 했던 그 시절의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에게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셨다.
내가 요르단에서 처음으로 본 낙타 떼.
양 떼는 자주 보았지만,
그날처럼 50마리가 넘는 낙타가 줄지어 걷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햇살이 사막 위에 반짝이고,
그 낙타들의 그림자가 모래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풍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이건 하나님의 작별 선물이구나.”
그 순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귀국길,
이번엔 아랍에미리트도, 카타르도 아닌
영국을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하나님은 그 짧은 여정 속에서도
내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영국의 한 교회에서
요르단 난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나는 두 번의 예배 시간에 섰다.
짧은 영어, 떨리는 손, 메마른 목소리.
그래도 내 안에 있는 하나님 이야기를 전했다.
요르단에서 만난 난민 가정들,
사막 같은 곳에 있는 현지 교회,
그 땅의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에 대해 말했다.
사실 내 영어실력은 너무 부족했다.
질문을 받아도 대답하지 못했고,
단어를 잃어버려 버벅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건,
그 모든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것이다.
영국 성도들은 내 말을 알아듣기보다
내 눈빛을, 내 마음을 들었다고 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순종하기 때문이라는 걸.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가이드’였다.
사람을 인도하는 가이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믿음의 안내자.
떠남의 끝에서도 나는
끝까지 ‘보냄 받은 자’였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본 구름 사이,
햇빛이 쏟아지던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부족했지만, 당신은 끝까지 저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여정이 끝이라면,
다음 여정은 당신의 품 안에서 시작되게 하소서.”
요르단의 모래,
영국의 하늘,
그리고 한국의 바람이
하나님 안에서 한 줄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건 나의 귀국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신 순종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나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보내고 계셨다.
떠남도, 귀국도,
모두 그분의 부르심 아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