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도 하나인 마음

12장. 기억의 사람들 ― 하나님이 남기신 얼굴들

by 봄울

아라바 국경.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나는 손님들을 이스라엘 국경으로 보내드리고
아카바에서 암만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여인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집트 여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요르단 남편에게 쫓겨났다고 했다.
빈손이었다.


그녀의 고국으로 돌아가려면 남편의 허가증이 필요했지만
그것마저 없었다.
그래서 길 위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채로.


나는 지갑을 열어 50달러를 건넸다.
옆에 있던 요르단 현지 가이드가 상황을 듣더니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통행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날의 일은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오래 남았다.


버스가 출발할 때,
그녀는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슈크란(고마워요).”


그 짧은 단어가 내 마음속에 오래 울렸다.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쫓겨나
이제는 낯선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현실.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문득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녀처럼
상처받은 채, 빈손으로 쫓겨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때마다 나는 ‘바닥’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바닥에서 늘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주었다.
요르단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라바 국경에서 만난 그 여인은
단지 내가 도운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내 모습이었다는 걸.

그녀를 도울 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구나.”


그런데 하나님은 나중에 내게 말씀하셨다.


“그날 네가 던진 그 지푸라기,
내가 기억하고 있었단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한다.”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조금 이해한다.
내가 던진 작은 친절의 씨앗은
시간이 흘러 내게 돌아왔다.
그건 은혜의 순환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오늘은 내가 도와주는 사람일지 몰라도,
내일은 내가 도움을 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베풀고,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따뜻하게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분의 시선으로 보신다.
내가 귀히 여김 받는 자녀이듯,
그 여인 또한 하나님께 귀한 자녀였다.


그날의 50달러보다 더 큰 것은
그녀가 나의 마음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은 때로 이렇게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가르치신다.


그 얼굴이 슬픔에 젖어 있어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그 얼굴이 바로,
하나님이 내 마음에 남기신 얼굴이었다.


“그날의 이집트 여인은 나의 거울이었다.
내가 도와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셨다.
그 얼굴을 통해 나는 자비의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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