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버틴다는 것의 새로운 정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게 숨긴 채
그저 시간을 넘기는 것.
그래서 버티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메말랐다.
버텼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버틴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버틴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
나를 놓지 않는 일이라는 걸.
무언가를 해냈을 때만
의미 있는 하루가 되는 게 아니라,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상태를 인정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그것도 분명히
버티는 일이다.
버티는 동안
나는 계속 묻는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
무엇이 나를 조급하게 하는가?
어디에서 창피함을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나를 더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를 속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버틴다는 건
감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데리고 오늘을 통과하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버티는 하루를
이렇게 정의한다.
잘 되지 않아도,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했어도,
오늘의 나를
존중한 채 잠자리에 드는 것.
그게 내가 찾은
새로운 버팀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나를 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씩 회복시킨다.
어쩌면
앞으로도 한동안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버티는 날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