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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을기억해 Apr 29. 2022

비를 좋아하세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문득 빗소리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온갖 음악을 틀어도 채워지지 않던 빈자리를 채우는 마지막 퍼즐처럼 빗소리를 거기에 더한 것만으로 내가 바라던 분위기를 마주하게 되는 바로 그런 날. 말없이 건네는 인사처럼 땅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사람들과 일상 속을 오가며 뾰족해졌던 마음마저 살포시 안아주는 듯하다. 그렇게 내 마음이 빗소리에 한껏 젖어들고 나면 고요와 평온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안식을 얻었을 때 비로소 '진짜 나'를 생각해볼 여유가 생기고,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되짚어볼 마음이 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덜컥 떠오르는 영화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알고 있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일본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모른다고? 모른다면 모르는 대로 당신은 행운아다. 그토록 인상 깊은 해바라기들과 비 내음이 물씬 풍기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속는 셈 치고 한 번쯤은 나를 믿어봐도 좋지 않은가. 영화를 볼 결심이 섰다면 이 영화는 비라는 장치를 통해서 당신을 마법 같은 이야기 속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다 보고 나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문장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고 말이다.


희미한 내 기억에 잔상처럼 남아있는 영화의 한 조각은 주인공 아이가 '비의 계절'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비를 내려주는 인형을 매달아 두는 장면이다. 아이의 순수함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그 장면은 지금 떠올려보아도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화 같은 이야기가 그렇고 비도 그렇듯 언젠가는 끝에 다다르는 순간은 있는 법. 아이처럼 '좀 더 오래'를 바랐건만 영화는 어느 순간 그 끝을 예고하고 만다. 동화 속 이야기야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된다지만 비가 그쳤을 때 당신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특히 재즈 음악이 땡길 때가 많은 편이다. Jacob Koller의 Out of The Past나 Mateo Stoneman의 Under The Moonlight, Diego Figueiredo의 Valsa Curitibana 같은 곡들이 바로 그것인데, 적절한 리듬이 가미된 재즈 음악들은 사람을 한층 감상적으로 젖어들게 만드는 좋은 매개가 된다. 바깥에서는 빗소리가, 실내에서는 재즈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때는 바로 접신(?)하기 딱 좋은 그런 순간이기도 하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마감의 신, 창작의 신님이 글을 매끄럽게 쓰도록 도와주는 순간이 그 안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쓰는 것이 글이 되었든, 코드가 되었든 당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면 나는 간간히 빗소리를 음악과 함께 틀어놓기도 한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비가 내리는 소리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감상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는 바로 카페다. 이따금 카페 창문 너머로 내리는 비를 보며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왔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원한다고 쉬이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 같은 느낌으로 불쑥 찾아오곤 했다.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비와, 그 빗방울들이 창문에 부딪히며 만들어낸 빗물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모습과, 비를 피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형형색색의 우산들과, 땅에 고인 물가에 빗방울이 어지럽게 파형을 그려내는 모습들은 '불멍' 만큼이나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그저 빗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진 것 같은 그 순간들은 나에게 기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생각해보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인간이 축조한 온갖 건축물과 인공물 사이에서 도시의 적막을 깨고 자연이 홀연히 그 존재를 드러내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소란스럽거나 방정맞기보다는 제법 품격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을 에는 듯한 거센 추위나 따가운 여름 햇살이 그 강렬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거침없이 자연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 같다면, 비는 사뭇 다정하고 정감 있게 말을 붙이는 느낌이랄까? 사락사락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비가 올 때면 "이제 봄이에요" 하고 속삭임을 건네는 듯하고, 후두둑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대비는 "이래야 여름이지!" 하며 호쾌하게 퍼붓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가을에는 비로 인해 땅바닥에 젖은 낙엽과 꽃잎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제 가을이 끝날 거예요"라는 편지글을 전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 편으로 우리에게 '곧 겨울이 오겠거니' 예감하게 만드는 그 편지는 온 자연이 겨울을 준비하게 만드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비는 생명의 시작과 끝의 경계 어디쯤에서 수문장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땅 속에 생명이 태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비요, 그 끝을 알리는 것 또한 비인 것이다.


하루는 출근길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며 문득 우리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빗방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고, 먼저 태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갑작스레 삶의 끝에 다다른다. 빗방울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삶은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에 닿기 전의 어딘가에 있는 셈이다. 살다 보니 홀로 떨어지는 것이 삶인 줄 알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무수히 많은 빗방울이 옆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 빗방울들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 서로 포개지고 다시 서로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들의 인생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의 연속인 것처럼. 한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새해가 되었지만 봄비가 오려면 아직 몇 주는 더 남은 듯하다. 3월은 돼야 할까? 설을 앞두고 살랑살랑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길래 봄이 오려나 싶었는데 새하얀 눈발이 다시금 도시를 온통 하얀 것으로 물들이면서 겨울이 그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마치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며 일요일 밤을 느즈막히 붙잡고 있는 우리 직장인들처럼 겨울은 그렇게 치근덕대면서 끈덕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이다. 겨울이 가고 봄을 부르는 비가 얼른 내렸으면 좋겠다는 내 소망이 떼쓰는 아이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비가 온다면 어떨까? 봄비가 오면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갈 날이 왔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고, 실제로 비가 그친 후의 풍경들은 사진으로 담아내기 충분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꽃들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 사진의 생동감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내 말에 십분 공감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무지개를 마주하는 날이 있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무지개를 볼 수 없어도 좋다. 비 너머의 아름다운 하늘을 마주할 수 없어도 좋다. 누군가 내게 비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하염없이 쏟아내는 슬픔이나 눈물 같은 상징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적셔줄 희망과 설렘의 언어로 된 자연의 속삭임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당신도 비를 좋아한다고 얘기해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P.S1 이 글은 2022년 2월 3일에 썼던 글입니다.


P.S2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2018년에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원작 영화(2004)가 훨씬 더 좋았습니다. 유명한 영화라 다들 보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정말로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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