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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보명 Oct 24. 2016

파란만장 나홀로 모로코 (1)

여행의 끝에서 시작을 돌아보다

2016. 10. 15. 모로코, 마라케시, 제마엘프나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밤이 끝나간다. 물론 변수가 양의 무한대로 발산하는 이곳에서 내일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제 좀 모로코에 적응해서 언어의 마술사―라고 쓰고 삐끼라 읽는다―들이 즐비한, 리터럴리 혼돈의 카오스인 저 제마엘프나 야시장에 마음 편히 혼밥 하러 갈 수도 있건만 내일 새벽이면 텅 비어있을 저 광장을 지나 공항으로 떠나야 한다.


분명 같은 풍경이지만 모로코에 처음 도착한 밤과 오늘 밤의 느낌은 너무도 다르다. 아쉬움에 야시장을 더 구경하려던 찰나, 나를 둘러싸고 중국어와 일본어를 남발하는 삐끼들을 뿌리치며 역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여행 개요

기간: 6박 7일(2016. 10. 10~15.)

루트: 마라케시-하실라비드-마라케시

비용: 약 60만 원(말라가-마라케시 왕복 항공권 포함)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생경함의 연속이었다. 수요일(10월 12일)이 스페인 공휴일인 걸 늦게 안 것과 마땅한 한국어 가이드북이 없는 것, 그리고 몰타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것을 핑계로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이렇게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개발도상국' 여행은 그래도 EU의 혜택을 꽤 받는 것으로 보인 몰타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처음이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발하기는 했으나, 그 준비는 모로코에 일단 도착하고 나서에 대한 것이었지 말라가 공항에서부터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로코 국적기인 Royal Air Maroc을 타게 되었는데 이렇게 체크인이 느린 항공사는 처음이었다. 또 국제선임에도 창문이 25개인 것을 탑승 기다리며 셀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면서 엔진에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도 군대 이후로 처음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내부가 지저분한 비행기도 역시 처음이었다.


2016. 10. 10. 모로코, 카사블랑카, 무함마드 5세 국제공항

카사블랑카에서 환승을 했는데, 나처럼 이 공항에서 국내 환승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짧게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터미널 곳곳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콘센트―모로코는 숙소에서도 콘센트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멀티탭이 필수다―가 모여있어 마치 거대한 멀티탭 같았던 기둥 1개와 카페라고 하기도 민망한 '어떤 곳'과 화장실을 빼면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승객이 몰리면 의자도 부족할 것 같은 작은 터미널이라, 여기서 유심도 사고 환전도 하려던 계획은 처음부터 틀어졌다(다행히 환전은 말라가에서 미리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짝 멘탈이 흔들린 상태로 마라케시행 비행기를 타러 갔는데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비행시간이 고작 1시간도 안 되는 국내선임에도 말라가에서보다 훨씬 크고 좌석도 좋은 기종이었다. 약간의 어이없음을 느끼며 밀당 쩐다고 생각하고 탔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앞으로 겪을 파란만장한 일들에 대한 복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2016. 10. 10. 모로코, 마라케시, 마라케시 메나라 공항

마라케시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체크인만큼이나 느린 입국심사 덕에 공항 밖으로 나온 것은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나오는 길에 Inwi 통신사에서 무료로 유심을 나눠주는데 나중을 위해 받아두는 게 좋다!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여기는 모로코니까 말이다(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로코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밤늦게 도착하는 비행기는 강력히 비추한다. 버스가 끊겨서 숙소가 있는 제마엘프나까지 택시를 타야 했는데, 계획 짤 때 본 사이트에서 공항 택시 기사들을 "organized gang"이라고 했고 이는 사실이었다(모로코에서는 거의 모든 거래가 흥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오죽하면 호스텔에서도 반드시 100디르함(1디르함≒115원) 이하로 타고 오라고 친절히 메일로 미리 안내해주었다.


돈을 약간이라도 아끼려면 공항에서 조금 벗어나서 타는 게 좋다고 한다. 이렇게 전달체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원래 이대로 실천해서 50디르함 밑으로 타려고 했으나 공항 앞에서 어떤 기사에게 붙잡혀 얼마 못 깎고 65디르함에 호갱이 되었기 때문이다. 덜 걸어도 되고 100디르함 이하니까 괜찮다고 정신승리 하면서 타고 왔는데, 내일 새벽에 공항 갈 때 여행 마지막까지도 흥정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갑갑하다.


제마엘프나에 내렸을 때는 자정이 다 되어 첫 사진처럼 인파가 절정에 달해있었다. 아시아인은 나밖에 없어서 다 쳐다보고 삐끼들은 달라붙고 배낭은 무겁고 소매치기 신경은 쓰이고 호스텔 가는 길은 찾아야겠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 넓은 광장에서 겨우 골목 입구를 찾아 들어갔는데, 미로 같은 메디나 골목 안은 광장과 달리 좁고 어두웠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몇이 벽에 기대거나 의자에 앉아있었다. 소매치기가 문제가 아니라 무슨 일을 당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설상가상 구글 맵에 골목들이 전부 나와있는 게 아니어서 결국 길을 잃었다.


식은땀이 날 때쯤 한 청년이 다가와 어디 가냐고 물었다. 어차피 혼자서는 도저히 못 찾을 것 같아 호스텔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점점 메디나 안으로 들어가길래 살짝 무서워져서 마치 트렁크에 갇혀 납치당한 코난처럼 필사적으로 길을 외우며 따라갔다. 다행히 나쁜 청년은 아니었고 정말 호스텔 문 앞까지 데려다주어서 오해한 게 미안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동전 몇 개를 주고 호스텔로 들어왔다.


마라케시에 머무는 동안 이 청년을 꽤 자주 마주쳐서 그새 정이 들었는지, 마지막 밤에는 인사라도 하고 떠나려고 골목을 서성이며 기다렸으나 ―장족의 발전이다. 한밤중에 혼자 메디나를 서성이다니!― 안타깝게도 결국 만나지 못했다.


여행할 때 보통 제일 싼 호스텔에서 자는 편인데 이번에는 1박에 5천 원 정도인 곳이었다. 평점도 만점에 가깝고 리뷰도 괜찮고 사진도 나쁘지 않아서 예약했는데 몰타 때도 그렇고 싼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일단 사진과 너무 달라서 혹시 같은 이름의 호스텔이 2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고 직원은 잔돈이 없다며 거스름돈을 나중에 주겠다고 했고 화장실에는 거울이 없었다. 자주 느끼지만 외국인들은 숙소 평점에 관대한 것 같다. 


시간도 늦었고 피곤해서, 무사히 도착했음에 감사하고 그다지 좋지 않은 모로코의 첫인상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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