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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보명 Nov 02. 2016

파란만장 나홀로 모로코 (3)

버스에서 다시 깨닫는 인생사 새옹지마

2016. 10. 12. 모로코, 마라케시, 제마엘프나

밤의 제마엘프나가 시장의 이미지라면 새벽의 제마엘프나는 넓직한 공터와 비둘기들, 그리고 어디론가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광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점들과 인파로 인해 밤에는 보이지 않던 반대쪽 끝이 보이고 이제야 비로소 이 광장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마라케시에서 하실라비드까지는 600km가 넘는, 버스로 약 13시간이 걸리는 ―비행기로는 한국도 갈 수 있을― 엄청난 여정이다. 가는 길에 있는 웬만한 마을에는 거의 다 정차하는 데다 대부분의 구간이 왕복 2차선밖에 되지 않고, 특히 마라케시에서 와르자자트로 가는 길에는 산맥을 통과해야 한다. 아침 8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뿐이기에 이날은 하루를 통째로 이동하는 데 소비해야 한다.


수프라투어 버스를 탈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캐리어나 큰 배낭 같은 트렁크에 실어야 하는 짐이 있다면 공항에서 수하물 부치듯 터미널에서 미리 돈을 내고 짐표를 구입해 짐에 붙여야 한다.


둘째, 탑승권에 써있는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자기 자리에 앉자! 빈 자리가 많이 있더라도 만약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앉아있다면 정중히 자리를 옮겨줄 것을 요청하자.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 못한 불상사를 초래할 수도 있다(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사진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셋째, 물과 간식과 따뜻한 옷과 물휴지를 들고 타자. 휴게소를 두어 번 들르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휴게소'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굉장히 작고 굉장히 더럽다. 여자 화장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자 화장실은 재래식 변기인 곳도 있고 이 경우 직접 통에 물을 받아 부어서 물을 내려야 하며(!) 휴지와 비누도 당연히(?) 없다. 휴게소에서 파는 음식 중에는 손으로 먹어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런 화장실을 다녀온 후 그 손으로 밥을 먹는다? 나는 그렇게 했고 아무 탈도 안 났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리고 에어컨을 세게 트는 경우가 있으니 담요나 두꺼운 옷도 잊지 말자.




인생이 그렇듯, 여행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항상 나쁜 쪽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계획했던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버스 출발 전에 실낱 같은 데이터 충전의 희망을 품고 터미널에 있는 매점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끼며 버스에 올랐다. 옆자리에 모로코 청년이 앉았길래 어디 가냐부터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다가 유심 얘기가 나왔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내게 데이터를 보내주겠다고 했고, 1기가에 얼마냐고 묻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이건 선물이라고 했다. 순간 그에게서 날개를 보았다. 그리고 그가 와르자자트에서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무려 2기가의 데이터가 들어왔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것이다.




마라케시에서 하실라비드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풍경은 너무나도 이국적이다. 버스가 산을 넘어 사하라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바뀌는 바깥의 모습은 수능을 준비하며 공부했던 세계지리에서 배운 여러 기후들을 떠올리게 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장면들이 수도 없이 스쳐지나가 아쉬울 뿐이다. 만약 다시 모로코를 올 기회가 있다면 차를 렌트해 다니고 싶다.


하실라비드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였다. 숙소에서 픽업을 나와 차를 타고 이동했다. 하실라비드는 특히 한국인들이 사막 투어를 위해 많이 찾는 마을인데 특히 서로 붙어있는 두 숙소가 유명하다. 한 곳은 내가 묵었던 Auberge La Source, 다른 한 곳은 알리네로 알려진 Auberge l'Oasis이다. 비수기임에도 역시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16. 10. 13. 모로코, 하실라비드, Auberge La Source

사막에서의 밤하늘을 찍기 위해 무거운 삼각대까지 들고 왔고, 다음 날 사막에서 본격적으로 촬영하기에 앞서 숙소에서 미리 연습을 해보았다. 사막에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별이 정말 많았고 별자리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침 오리온자리가 뚜렷하게 나타나 카메라에 담았다.


저번 학기에 들었던 천문학 교양과목도 그렇고, 우주와 관련된 것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전과해야 하나...?). 고등학교 때도 비록 문과였지만 지구과학은 항상 재미있었다. 천문학 수업을 들을 때의 그 설렘이 피곤함을 이겨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별을 찍었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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