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집착증 아빠로 인한 부작용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게 무서워졌다. 퇴근해 돌아올 시간이 되면 내 몸은 바짝 긴장이 되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유는 단 하나, 오늘도 흡연 후 향수 뿌리고 오겠지. 이제는 아빠하면 자연스레 담배가 연상되는 게 익숙하게 되었다.
아빠는 담배이고, 담배가 아빠이다. 무슨 혼연일체와 같은 존재로 받아드려졌기에 나는 방안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피해를 받는 쪽이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라도 최대한 내 몸을 보호하며 담배 성분으로 인해 일어나는 반응을 막아야만 했다. 그러니 최대한 아빠와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어차피 ‘담배 피고 향수를 뿌렸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할 거고, 계속 실랑이만 할 게 뻔했다.
아빠는 식사 여부를 엄마에게 카톡으로 알렸다. 야근을 하면 회사에서 먹고 온다고 보냈고, 정상 퇴근을 하면 집에서 먹는다고 보냈다.
그것에 따라 내 피신 여부도 결정이 되는 것이다. 아빠가 야근하면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빠가 집에서 밥을 먹는다고 하면 오기 한 시간 전부터 불안했다.
오후 5시부터 내 활동 영역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아예 거실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혹시 그곳에 있다가 현관에서 아빠가 오면 피할 공간이 없다. 어김없이 담배 냄새라는 공격에 노출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꼼짝없이 방안에 들어가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우두커니 멍을 때리며 계속해서 시계만 쳐다보게 되었다. 머릿속엔 오직 담배 냄새를 피하겠단 일념뿐이었다.
띠, 띠, 띠-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얼른 방문을 꽉 닫아 두었다. 닫힌 방문을 보며 나는 그제야 안도를 했다. 담배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죄인도 아닌데, 숨어 있어야 하는 모양새가 처량 맞기도 했다. 그러나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와서 며칠 동안 고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숨는 쪽이 나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것도 하다보니까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도어락 소리가 들리면 일사분란하게 방문을 닫고 미리 준비해둔 마스크를 꺼냈다. 그리고는 아빠가 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복도에도 떠있을 혹시 모를 담배 냄새 분자를 피하기 위해 집에서도 마스크를 썼다. 아빠가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걸 확인한 후 나는 비로소 무장해제를 하고는 식탁 앞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담배와 멀어지기 위한 딸의 사투를 봐서일까. 아빠는 이제 밖에서 향수를 뿌리지 않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이 같은 사실을 말하며 좀 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잠깐 자중하고 있는 거라며 미심쩍어했다.
딸이 저렇게 기겁을 하고 방으로 숨고 마스크도 쓰고 그러는데, 아빠로서 느끼는 바가 있으니까 그러지.
엄마는 아빠를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의심의 끈을 100퍼센트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워낙 말과 행동이 불일치되었던 아빠였다. 믿음이 아닌 불신 마일리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기에 쉽게 마음의 빗장을 열 수가 없었다. 최소한 한 달 이상은 향수를 안 뿌려야만 아빠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은 조금은 지켜보기로 했고, 이러한 일상을 유지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빠가 오면 나는 방문을 닫았다. 마스크를 쓴 채로 식탁에 가고 안심이 되면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나는 내 방으로 건너 들어왔다. 알레르기가 생긴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내게 되었다. 사실 아빠와 거실에 있기도 불편하기도 했다. 마음의 골이 풀리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방안에 있는 게 편안하기도 했다.
엄마는 하루에 한 번씩 꼬박 반려견과 산책을 나갔다. 만약에 일이 생겨 낮에 산책을 못하면 저녁에 데리고 나가고는 했다. 밤에는 내가 흡연자들과의 깜짝 만남으로 또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올까봐 나갈 수가 없었고, 엄마와 반려견 둘이서 산책을 나갔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던 것 같고, 엄마는 성당에 갔다가 돌아와서, 한 9시가 넘어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나는 방문을 닫고 있었고 아빠는 거실에 있었다. 한 시간 후에 엄마와 반려견이 돌아왔고, 아빠는 자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산책이 만족스러웠는지 반려견이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나는 그런 반려견을 못내 사랑스럽게 쳐다본 뒤에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그때 시간은 11시 20분이었다. 엄마가 ‘아, 내 정신 좀 봐라’라면서 세탁기에서 빨래들을 가지고 왔다. 그것들을 넌다고 옆방 베란다 문을 열었다.
순간 나도 얼고 엄마도 빨래를 들고 놀랐다. 예상치 못한 향수 공격에 우리 모녀는 패닉에 빠져 버렸다. 살얼음을 걸으며 조심했던 나에게 또 다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왔다. 방심한 사이에 크게 한 방 먹은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엄마와 반려견이 외출하고, 내가 방문을 닫고 있는 틈을 노려서, 또 다시 실내에서 흡연을 시도한 것이다.
흡연하고 향수를 뿌리는 뻔하디 뻔한 수법이었다. 아니, 걸렸던 수법을 또 하고, 걸리면 우기고! 차라리 창의적인 방법이라도 생각한다면 인정이라도 해줄 텐데,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지능 낮은 행동을 왜 지속하는가. 무엇보다 자식이 아픈데 왜 계속 아픈 환경 속으로 밀어 넣는가.
다음날 엄마는 아빠의 향수를 몽땅 다 처리했다. 그리고 퇴근한 아빠에게 경고를 했다. 이제 집에는 향수가 없는데, 만약 밖에서 향수를 뿌리고 돌아오면, 흡연을 계속 하는 것으로 생각할 거라고.
그날부터 아빠는 밖에서 향수를 뿌리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과도한 향수 집착으로 인한 부작용이 내게 생겼다.
냄새에 관한 노이로제가 심해진 것이다. 집에서 조금만 냄새가 나도 예민해졌다. 냄새의 근원지가 확인이 되어야지 안심했다. 한 번은 소고기를 선물로 받아 구운 적이 있었다.
익어가는 고기= 담배 연기로 괴로워하는 내 모습. 지방이 불에 익은 소고기의 냄새가 죽음의 냄새처럼 맡아졌다. 기름 냄새가 너무 역해서 겨우 한 점 먹었다. 그것마저도 위액과 함께 다 토해냈는데, 새벽에 그 기름 냄새 때문에 잠을 설쳤다. 겨우 한 점 먹었고, 그것도 다 토했다. 그 새벽에 그 기름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지금은 좀 호전되었지만 아직도 노이로제 후유증이 여전하다. 엘리베이터에서 향수 냄새가 나면 심장이 뛰고, 여전히 집에서 소고기는 못 구워 먹는다. 특히 길을 가다가 담배 냄새가 나면 놀래서 움찔한다.
담배는 아직도 내게 위협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