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내가 죄를 지어서 그래

다친 아빠로 인해 또 갈등을 봉합하다

by 윤본아

핵심이 빠진 알맹이 없는 사과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 손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긴 아빠가 걱정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원. 담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한 아빠였다. 그럼에도 아픈 걸 보니까 내가 당했던 모든 불합리한 일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더라.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신경이 쓰였지만, 이상한 사과를 받았으니 혼란스러웠기에, 그저 방안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부분은 바로잡고 싶었지만, 당장 아빠가 다쳤으니까 냉정하게 굴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렸다.

그때 구세주처럼 외출을 한 엄마가 돌아왔다. 방안에서 다행이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닫힌 방문에 바짝 귀를 갖다 대었다. 잠시 뒤 엄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아빠의 손가락에 감긴 붕대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슬며시 방문을 열었다.


“당신 손가락 왜 이래? 어쩌다 다쳤어?”

아빠는 현장에서 무거운 철판을 파트너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트너가 그걸 놓치는 바람에 들고 있던 아빠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며 바닥에 찧어서 손가락이 다친 거라고. 엄마는 이 정도로 다친 걸 천만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걸 도둑고양이처럼 듣고 있던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저렇게 아빠가 힘들게 일해서 다쳤잖아. 내가 집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건가. 나 때문에 모든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건가. 걱정은 되기에 나는 방을 나와서 꽃게처럼 슬금슬금 부엌으로 갔다. 그러면서 무신경한 척 하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사부작대다가 아빠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많이 다친 거야?”

아빠는 붕대를 보며 살짝 손가락에 금이 간 것이라고 답했다. 나를 힘들게 해서 밉기도 하고 근데 왜 다쳐서 걱정하게 만드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기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말을 하고도 나는 살짝 움찔했고 아빠를 봤다. 냉전을 하며 보지 못한 아빠는 약간은 수척해지고 말라보였다. 그러니 죄책감이 들었고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단 느낌이 강렬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빠가 갑자기 넌지시 말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죄를 지어서 그런가봐.


뜬금없는 말에 아빠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가 얼른 말을 던졌다.

“죄 지었다는 건, 당신이 집에서 담배 폈다는 거야?”

엄마의 직접적인 물음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여나 아빠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긴장을 하고 있었다.


“어. 폈어.”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아니라고 우겨댔던가. 그런데 아빠가 스스로 실내 흡연 사실을 실토를 하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자 나는 한 줄기 희망을 얻으며 재빨리 2월 달과 3월에 실내 흡연을 한 게 맞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빠는 2022년 3월 9일, 테이프가 막힌 방만큼은 죽어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빠는 저번처럼 똑같이 행동했다.


흡연 사실을 몽땅 인정하는 게 아니라 일부 흡연 사실만 인정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이 너무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 거면 시원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행동을 번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사과도 왜 항상 곁다리를 걸쳐 놓고 줄다리기를 하듯 간을 보는 것처럼 하는 걸까.


반쪽짜리 사과가 아닌 온전한 사과를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담배 냄새를 잘못 맡지 않았다는 점을 아빠의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입증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 담배 문제로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런 쓸모없고 한심한 짓거리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3월 9일에 내가 분명히 담배 냄새 맡았어. 복도에서 그렇게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어떻게 잘못 맡아.” 내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빠는 계속 부인했다. 2월은 자신이 한 게 맞는데 테이프로 막혀 있는 그 방에선 절대 흡연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이 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빠는 믿어달라면서 애처로운 눈망울로 손에 감긴 붕대를 만지작댔다. 그걸 보자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자식이 부모가 아픈데 잘못된 부분을 끝까지 파고들면서 캐물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다친 곳은 괜찮아?”

아빠는 낮에는 엄청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통증이 사라졌다고 하면서 엷은 미소로 웃었다. 완벽하게 모든 걸 인정하지 않은 점. 그게 뭔가 석연치 않고 기분이 찝찝했지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스스로 잘못된 점을 시인했다는 것. 반성을 한다는 부분이 변화할 수 있는 조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나는 투정 섞인 화를 냈다. 아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우리 앞에서 단단히 맹세했다.


“내가 이번에 큰 깨달음을 얻었어.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는 걸. 그러니까 우리 가족 다시 한 번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

아빠는 다친 손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가족을 위해 일하다가 다친 그 손가락. 묘한 죄책감으로 인해 나는 아빠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그렇게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반려견. 같이 사는 넷의 손이 하나로 합체되었다. 단단하게 가족의 화합을 외쳤고 그제야 비로소 엄마와 나는 굳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때 아빠가 우리가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을 하고 단단하게 결속을 하기로 했으니 술을 마시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기도 하고, 손의 통증으로 차마 잠이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 이유였다. 냉전 상태에서 화해하는 거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또 아빠가 아프기도 하니까 엄마와 나는 또 흔쾌히 그 요구를 들어주게 되었다.


흡연 사태가 길어지며 깨닫게 된 건 하나였다. 아빠는 본인이 원하는 걸 쟁취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가족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본인이 아프거나 다친 것도 모두 가족의 연민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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