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검사 키트로 결의를 다지는 모녀
예민하단 말은 내 시그니처와 같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예민하단 말이 내 뒤를 언제나 따라오고는 했다. 특히 친가 쪽에서는 ‘쟤는 툭하는 우는 예민한 아이’로 내 이미지가 낙인이 찍혀버렸다. 친가 쪽 누구도 내게 직접 예민하다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윤 씨 집안에 예민한 애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내 앞에선 절대 그걸 티내지 않았다. ‘예민’이라는 단어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예민함을 가장 가까운 존재로부터 전달 받았다. 엄마나 동생S에게 ‘쟤는 유별나게 예민하다’라든가 ‘네 누나는 왜 저러냐’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이다. 어쨌든 제 3자로부터 그 이야길 들은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내 앞에서는 웃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놓고 뒤에서는 그런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 어린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렇기에 내 행동거지에 대해 더 신경을 썼고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혹시라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들이 나의 예민함에 피해를 입을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던해지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왔다.
긍정과 관련된 서적도 보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동영상도 보고, 명상도 해보면서 예민함을 탈피하려 애를 썼다. 어떤 상황이 닥쳐서 무감각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어떤 상황에 늘 반응을 했고 내 목표는 실패했다.
친할머니가 밥을 안 먹겠다고 사람 진을 빠지게 할 때 내 인상은 저절로 찌푸려졌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안경도 깨지고 무릎도 다 깨져서 새벽 늦게 들어오면, 왜 조절을 못해서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힘들게 하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밤늦게 내 행동에 대해 돌이켜보면서 내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다. 왜 나는 이런 일을 무던하게 넘어가지를 못하고 예민하게 구는지 자책이 되었다. 왜냐면 동생S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덤덤한 반응이었고, 그러지 못하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계속 예민하단 타이틀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예민해서 아빠가 담배 핀 걸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해?”
실내 흡연 문제가 터지고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담배가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는데도, 복도에서 가득 퍼진 담배 냄새를 맡았는데도, 아빠의 겨울 잠바에 깊게 배인 담배 냄새도 모두 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인가.
내가 직접 본 것이 잘못된 것일까. 알레르기도 내가 만들어낸 꾀병인 걸까. 내가 뭔가를 착각할 만큼 엄청나게 예민한 건가. 내 판단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묘하게 내가 틀린 것처럼 느껴졌다.
아빠의 행동이 내게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다. 아빠는 뻔히 흡연을 걸렸는데도 아니라고 잡아떼었다. 분명히 옷에도 담배 냄새가 풀풀 났지만 ‘피부에서 담배 진이 빠져서 그런 거잖아’라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는 말로 해당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항상 발생되었다. 내가 담배 냄새를 맡았다고 사실을 말하면 아빠의 행동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표정이 싹 바뀌면서 정색하는 건 물론이고, 식사를 거부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치 억울하다는 듯이 시위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야 말로 너무 억울했기에 아빠와 감정적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3월 9일에 방을 바꾸고 테이프로 막은 방에서 흡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 나는 아빠와 거의 한 달 넘게 대화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의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게 되었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고, 염증이 나서 몸에 다 파스를 붙이고, 계속 감기에 걸리고, 체중이 5키로 이상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러니까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들었다. 마치 나 때문에 아빠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2021년 4월에 아빠가 손가락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게 되며 갈등이 봉합된 것이다. 간신히 가족 간에 평화를 찾았지만 내 육체와 정신적 고통은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더 이상 담배 때문에 심리적 지옥을 맛보기 싫었다. 아빠와 또 다시 대치하는 거 자체가 너무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담배 성분으로 인해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오면 어떻게든 참아내려 악착같이 노력한 것이다.
물론 이것마저도 실패하게 되었다. 결국 성격도 예민하고 내 몸도 예민해서 부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서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혹시나 내 마음을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엄마에게 물어보게 된 것이다.
“착각은 무슨……. 그때 화장실에서 연기가 나는 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네 아빠 아직도 담배 못 끊고 있는 것 같은데, 뭘.”
엄마의 말을 듣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내 행동이 이상하지 않다는 게 확인이 되는 것 같아서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엄마는 믿어주니까, 한 사람이라도 믿어주니 되었다. 아빠는 담배 의존도가 너무 높은 48년차 흡연자이니까 그런 것이다.
엄마에게 니코틴 검사 키트로 한 달 동안 음성이 나와야지만, 내가 심리적으로 안심이 될 것 같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좀 추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엄마는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며 내 말에 동의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아빠가 담배를 끊지 못하는 현실에 한탄을 했다.
“내가 이런 알레르기가 안 생겼다면 좋았을 텐데.”
“네 아빠 때문에 네 몸이 버티다가 병이 든 거지.”
그럼에도 내 몸이 건강했다면 이런 알레르기가 안 걸리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어서 이젠 병으로 부모를 괴롭히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못내 무거웠다.
흡연자 아빠와 담배 알레르기 환자인 딸. 어쩌다 보니 함께 공생하기 힘든 물과 기름 같은 관계가 되어 버렸다. 현재 상태로는 내가 독립을 할 수가 없기에 오롯이 아빠가 금연하기만을 바라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오직 아빠의 금연만이 내 인생의 답이 된 것이다. 이 비극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지만 넋 놓고 주저앉아 슬퍼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낼 방법을 찾아야지.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었고, 언젠가는 내 최선이 옳은 선택으로 증명될 거라고 믿었으니까.
“근데, 아빠가 이 검사를 순순히 할까?”
우선 니코틴 검사 키트를 주문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 동안 갈등을 겪으며 아빠의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직접 경험을 통해 얻지 않았나. 아마도 금연하고 있는데 믿어주지 않는다며 우리에게 분노하며 또 다시 단식 투쟁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또한 아빠가 이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면 내 딴에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계속 담배 냄새에 노출되어 참는 건 한계가 있었다.
“하게 만들어야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엄마가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서 나 역시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더는 담배로 인해 내 인생 무너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