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왜 여기서 나와?
“술 마시고 또 담배 피고 오면 어떻게 해!”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짜고짜 엄마에게 호소했지만 아빠는 이미 우리에게 통보를 해버린 상태였다. 아빠가 가지는 모임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었다. 바로 아빠가 10대 때 친구들과 소나무에서 담배를 물고 찍은 사진의 주인공들이 있는 단체기도 했다.
그 동창들 대부분이 흡연자였고 간암이나 폐암에 걸려 일찍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계셔서, 아빠가 조문을 가고는 했다. 2022년도에 아빠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당연히 담배에 예민해진 나는 다른 모임도 아닌 고동학교 동창 모임에 간다고 하니 기절할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곧장 아빠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아빠에게 그 모임에는 흡연자가 많고 혹시라도 아빠의 옷에 담배 냄새가 묻어서 내 알레르기가 터지면 어떻게 하냐고 따져 물었다. 아빠는 자신이 회장이라 모임에 빠질 수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내게 되물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아빠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담배 피는 친구들 피해서 앉으면 괜찮으니까 걱정 마. 일찍 들어갈게.’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표정이 굳었고 엄마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빠가 자식이 이렇게 아픈 걸 아는데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다면서 믿어보자고 했다. 아빠는 늘 약속을 안 지키는데 믿느냐고 하며 나는 짜증을 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초조하게 시계를 자주 쳐다봤다.
시간을 계속 확인을 하면서 ‘엄마. 아빠 또 취해서 들어오는 거 아니야?’라며 불안함을 드러냈고, 엄마는 ‘약속했으니 기다려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그러면 나는 믿을 게 따로 있지 않냐며 히스테릭한 반응으로 응수했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동안 알코올 관련해서 아빠의 전적은 참으로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18번지가 바로 ‘일찍 갈게.’와 ‘술 조금만 마실게.’였다. 하지만 항상 이 두 가지 말은 지켜진 적이 없었다. 언제나 늦게 들어왔고 술이 떡이 된 만취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빠가 회식을 하거나 술 약속이 생기면 나는 긴장 상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놓고 있다가 언제나 불상사가 생겼으니까. 아빠가 다리에 힘이 풀려 부상을 당하거나, 안경이 깨져서 온다거나, 지갑이나 소지품이 없어지거나, 만취한 아빠를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하나씩 터졌다. 이럴 때 쓸데없이 내 예민한 촉이 발동될 때가 많았다.
20대 때 어느 날이었다. 아빠는 토요일에 술 약속이 있었고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이른 시간도 아니었고 한 11시쯤이었다. 아빠가 오지 않은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오겠지 싶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이상한 것이다. 마치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 누운 지 40분이 넘어서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웬 낯선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딸인가 본데, 아버지가 핸드폰을 두고 가셨나 봐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노래방 주인이었고, 아빠가 취해서 핸드폰을 두고 갔다는 것이다. 몽롱했던 기운이 싹 가시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들어왔다. 물론 내가 잘못한 건 아니나 어쨌든 나의 아빠 때문에 노래방 주인에게 피해를 입힌 것 같아 죄송하단 말부터 했다.
시간이 늦어서 내일 핸드폰을 찾으러 간다고 하니, 노래방 가게 주인은 상관없는데 오픈을 오후 3시에 한다고 했다. 혹시 죄송한데 지금 찾으러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으니, 가게 마감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연신 죄송하단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외출준비를 하니 졸고 있던 엄마가 물어봤다. 나는 자초지종을 말했고 엄마는 ‘내가 못 산다. 못 살아.’라면서 짜증을 냈다. 자기 방에서 졸고 있던 동생S도 사정을 듣고 함께 갈 채비를 했다. 엄마에게 아빠가 올 수 있으니 왔다면 우리에게 연락을 달라고 하고 윤 씨 남매는 아빠의 핸드폰을 찾으러 노래방으로 길을 떠났다.
노래방 주인에게 연신 죄송하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돌아오자 아빠는 본인의 핸드폰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취해서 자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정말 비일비재했다. 특히 내 예민한 촉은 언제나 아빠가 술에 만취해서 들어올 때 발휘가 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아빠가 만취할 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느낌이 있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도 아빠가 취해서 들어오는 걸 걱정하지 않고 내 할 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날도 유달리 기분이 이상했고 촉이 발동되었다. 묘하게 신경이 긁혔고 왠지 모르게 아빠가 또 술에 취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임에 나간 아빠에게 계속 연락을 해서 닦달을 할 수는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렸고 저녁 10시가 되었다.
아빠가 멀쩡한지 중간 점검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언제나 집안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아빠한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30분 간 계속 연락을 하다가 엄마 핸드폰으로 아빠에게 전화해보라고 닦달을 했다.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아빠한테 전화했고 잠깐 당황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역시나이군. 호프집 직원이 남편 분이 핸드폰을 두고 가신 것 같다고 하는 음성이 핸드폰 너머로 울렸다. 호프집 주소를 상세히 물어본 뒤에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나는 엄청난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이 맞지 않느냐, 아빠가 믿으라고 하면 꼭 술이 취하는데 엄마는 왜 항상 속는 거냐. 술에 취했으니까 동창들 사이에서 담배 냄새를 잔뜩 베어서 올 텐데 어떻게 하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믿은 내가 바보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는 났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아빠는 만취상태가 되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어쨌든 순차적으로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아빠 옷과 몸에는 담배 냄새가 배어 있을 수 있으니, 나는 얼른 에어컨을 틀어 공기청정기 모드로 바꾸어 두었다. 엄마는 방안에 있으라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후딱 가서 핸드폰을 가지고 오겠다고 말했지만 아르바이트생이 말한 치킨 집은 우리 집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동생이 결혼했기에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담배 알레르기를 떠나 K장녀 아닌가. 팔삭둥이라도, 예민하더라도, 조금은 모자랄 지라도 책임감 하나만큼은 만땅이었다. 가족이 어려운 일에 처하도록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엄마는 밤이라 담배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고 걱정을 했지만, 반려견도 실내 흡연 이슈를 겪으며 불리불안 증세가 생겨 버린 상태였다. 내 상태도 그렇고, 반려견 상태도 그렇고, 엄마를 혼자 보낼 수 없기에 함께 아빠의 핸드폰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물론 아빠가 우리 없을 때 올 수 있는 게 걱정되기는 했지만, 아빠는 술이 많이 취해도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오는 특성이 있었다.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우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우리 셋은 호프집을 찾아가기 위해 지도를 보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내게 난관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호프집을 가려면 유흥가 길목을 지나야만 했는데 거리에 남녀 무리들이 함께 흡연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걱정스레 나를 쳐다봤고, 나는 비장한 얼굴로 숨을 참고 반려견 유모차를 꽉 잡았다.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뚫고 빠른 속도로 뛰었다.
숨이 차서 잠깐 코로 들이키자 담배 냄새가 훅 들어왔다. 또 혀가 저릿하면서 몸에 이상증세가 생겼다. 하지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빠의 핸드폰을 찾아가지고 가야 했기에 내 몸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어찌저찌 간신히 호프집에 도착을 했다.
엄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밖에 있었다. 한 커플이 유모차에 있는 반려견을 보고 귀엽다면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지나갔다. 무언가를 보며 피식 웃고 행복했던 지난날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저런 일상을 누렸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울컥 슬픔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올랐다. 그때 엄마가 아빠의 핸드폰을 가지고 호프집 밖으로 나왔다. 어쨌든 아빠의 핸드폰 찾는 미션은 성공이었다.
20대에도 30대에도 만취해 잃어버린 아빠의 핸드폰을 찾는 나도 참 한결 같다. 별로 썩 기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보다는 찾은 게 다행이라는 위로와 함께 또 다시 흡연자들이 있는 그 길목을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11시 50분이었는데 아빠가 귀가하지 않았다. 이 양반 또 어디서 쓰러져 자고 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집 주변을 살펴보겠다면서 다시 나갔다.
한 20분 뒤에 아빠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내 예상대로 담배 냄새가 지독하게 났고 아빠는 완전 취해 있었다. 눈은 거의 반쯤 감겨 있고 발목에 힘이 풀리는지 휘청거렸다. 나는 담배 냄새 때문에 주춤거리다가 아빠가 넘어질 것 같아서 숨을 참고 부축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침대에 큰 대(大)자로 뻗어 버렸다. 나는 얼른 엄마에게 아빠가 돌아왔음을 전화로 알렸다. 아빠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 거의 걸쳐져 있었다.
그런 아빠의 양말을 벗겨 드리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바지 주머니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지갑이 있었고, 다른 주머니에도 손을 넣었는데 작고 딱딱한 뭔가가 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