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어보자라고 결심하기 전에 뛰어들어도 될 곳인지 가늠이 필요했다. 날을 잡아 브런치북 몇 권과 글들을 읽어 보았다. 당시의 소회를 솔직히 말하자면 몇몇 글은 다이어리에나 쓸 법한 글이었다. 어떤 글은 너무 난해해서 아예 읽히지 않았다. 난이도로 치자면 그 중간쯤으로 느껴지는 글은 잘 읽히고 재미가 있었다.
글에 대한 비평이라면 비평을 어쭙잖게 마치고 난 후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했다. 첫 번째 작가신청에서 탈락을 했다. 뭐지? 정말 심사를 하는 건가? 나는 '다이어리에 쓸 법한 ‘이라고 제멋대로 평했던 글을 생각했다. 엄연히 심사를 통과해 브런치를 시작한 작가의 글이었다. 건방진 나의 비평은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심사기준은 알 수 없으나 내가 브런치에서 외면당한 한 가지 이유는 분명했다. 심사를 할 수 있는 글을 제출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심사라고 여겼기 때문에 대충 쓴 몇 줄의 글과 성의 없는 자기소개서를 보냈던 것이다. 브런치의 심사 덕분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진정성 없는 태도가 걸러졌다.
브런치에 두 번째 신청을 하기 전에 시간을 가졌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의 프로필을 준비할 시간을 갖고 쓰고자 하는 글의 목차도 정해 보고 신중하게 에세이 몇 편을 준비했다. 그렇게 브런치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의 문은 내게 진심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흘깃 보면 어려운 일이 없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내고자 한다면 상응하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 집 근처에 자주 가는 국숫집이 있었다. 그 집은 말 그대로 국수만 파는 국숫집이었다. 원래 막 오픈을 하면 그 가게의 맛이 궁금한 법이다.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가게를 발견했다.
마침 허기가 져서 배가 꼬르륵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가게에 2인용 테이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언뜻 보면 주방이 더 커서 식당이 아니라 국수 뽑아내는 집으로 생각되는 좁은 곳이었다. 슬쩍 들여다보니 아직 손님이 없었다. 문을 빼꼼히 열고 '장사하세요?' 물었다. 고개만 끄떡거리는 주인에게서 초짜 냄새가 났다.
메뉴는 달랑 하나 잔치국수였다. '한 그릇 주세요.' 주문을 넣었다. 주인은 일단 국수를 뽑기 시작했다. 반죽을 조물조물 둥글게 만들어 국수 뽑는 기계에 넣었다. 한 그릇 양의 국수가 금세 뽑아져 나왔다. 주인은 펄펄 끓는 물에 국수를 휘휘 저어가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찬 공기를 입혀 찰기를 더했다. 국수는 주인의 빠른 손에 냉수욕을 몇 번 더 한 뒤에 물기를 좍 빼고 그릇에 담겼다. 준비한 고명은 호박, 지단, 파 세 가지였다. 맑은 갈색을 띤 육수가 그릇에 부어지고 마침내 테이블에 올려졌다.
국물 한 스푼을 떠서 맛을 본 뒤에 국수 몇 가닥을 씹어 보았다. 쫀득쫀득한 국수가 고소하게 입안을 돌고 넘어갔다. 그날 나는 호로록호로록 국수 한 그릇을 정말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 장사 오래 하셨어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주인은 쑥스럽게 대답했다.
"아니오... 장사는 처음이고 국숫집에서 주방일을 오래 했어요. 이십 년 정도..."
"이십 년이요?"
"네에"
국수에 젊은 날을 다 바쳤을 주인은 다시 한번 쑥스럽게 대답하며 웃었다. 주방에서 나와 구석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주인의 손에 저절로 눈이 갔다. 손과 팔에 여기저기 거뭇한 상처자국이 있었다. 붉은 손가락은 퉁퉁 불어 있었다. 내게 쫄깃한 식사를 대접하느라 주인의 손이 대신 부었나 보다. 국수는 간단한 음식이 아니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면서 먹었던 마음이 좋은 책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브런치작가를 시작하고 글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첫 고비가 찾아왔을 때 내 글을 처음으로 천천히 읽어 보게 되었다. 대부분이 내용만 있었고 글쟁이의 글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한 두 편의 에세이는 작가 흉내를 내는 듯도 보였지만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글을 쓰면서 좀 더 디테일을 살펴보고 알맹이 있는 한 줄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계절에 변화하는 잎사귀를 살피듯, 산책로에 피어있는 들꽃잎을 엿보듯,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의 길을 쫓듯이 글을 쓰고 싶다. 내 고유의 문체가 정착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한 문장을 가더라도 천천히 미세함을 놓치지 않는 글을 쓰고자 한다.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는 것이다.
다른 작가들의 출간한 책을 부러워하느라 그들의 글 속에 숨어 있는 고뇌와 인고의 언어를 읽지 못했다. 브런치작가가 되기 전에 작가의 고단함을 깨달았다면, 어쩌면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른다. 내게 진정한 작고의 시간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