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거리두기

글이 써지지 않을 때

by 보나쓰

착착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를 내며 흰 여백을 채워가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바쁘다. 오후 내내 플레이되고 있는 바이올린 운율을 따라 리듬을 탄다. 가끔 공중에 띄운 손목을 휘휘 왈츠를 추듯 휘젓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글자 하나하나를 야무지게 수놓는다.


잠시 움직임을 멈춰 눈을 감고 음악에 취해본다. 유치환의 <깃발>에 나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구절처럼 여백을 채울 준비를 끝낸 글자들이 조용한 함성을 지르며 열을 지어 기다린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 그들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감사하게도 생각이 막히지 않는 날이다.


딴짓하며 글쓰기를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종종 한 눈을 판다. 잘 써지는 글은 집중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듯 사뿐사뿐 잘도 내려앉는다. 보통은 글을 마치고 나면 시간을 두고 수정을 여러 번 하는 편인데 그런 글은 수정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난잡해진다. 반면에 여백을 뚫어져라 쳐다만 보게 되는 때가 있다. 뇌와 가슴에 혈류가 없는 것처럼 차갑고 막막해진다. 나도 사물도 깊은 침묵을 지킨다. 몸이 굳는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주저 없이 한 눈을 판다.


일어나서 차를 한 잔 마신다거나 거실을 서성이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겨 정해져 있지 않은 지점에 눈을 두기도 한다. sns를 뒤적이다 좋은 그림에 하트를 남기기도 한다. sns에는 의외로 그림이 아닌 글로 말하는 작가들도 많다. 톡톡 튀는 짧은 글귀들에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글 한 줄에 우주를 담는구나 감탄할 때도 있다. 둘러보면, 작가는 내 주변 어디에나 있었구나...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가기도 하고 무슨 글을 쓰고 있었는지 잊기도 한다. 그래도 걱정 없이 일단 글에서 멀어진다.


좋은 글은 또 다른 좋은 글을 잉태한다.


잠깐 손에 잡히는 책을 한 권 선택해서 보기도 한다. 어느 책이라도 좋다. 가까이하고 싶어 근처에 둔 책이면 더 좋다. 그만큼 마음에 담긴 책이니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실제로 몇 권의 책을 작업데스크 위에 올려두었다. 언제든 다시 찾아 읽고 싶은 구절이 있는 책이나 마음에 안정을 주는 책들이다. 지금은 알베르까뮈의 '결혼. 여름'과 나태주의 산문집이 손에 닿는 곳에 놓여 있다.



옛날 사람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혼수로 넣어주는 오방색 주머니에 여러 가지 곡식과 함께 차의 씨앗도 넣어주었다고 한다. 차나무는 뿌리가 직근이어서 함부로 옮기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시집가는 딸에게 차나무를 닮아 그 집에서 뿌리내려 잘살라는 뜻으로 차나무 씨앗을 넣어주었을 것이다.



그제는 나태주의 산문 '차를 나누는 사이'를 읽으며 잠시 간격을 두었다. 따뜻한 문장이 보일러 틀어진 엄마집 거실에 배를 대고 누운 듯 마음에 온기를 더했다.


잠시 책을 더 읽다가 다시 글을 이어갔다. 써내려 온 글을 한 번 더 주욱 읽어 내리다가 한 문장을 필두로 다음여백을 지워 갔다. 잠시 휴식을 가진 머릿속이 한결 가볍고 날렵했다. 멈춤 없이 글자가 채워지니 살핌 없이 그냥 써내려 갔다.


글이 안 써지는 대부분의 경우 나는 이렇게 '딴짓'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우며 완성해 간다. 음악, 미술, 한잔의 차 모두가 영양가 높고 유익한 자양분이며 선생이다. 머리카락을 뜯지 않고 신세를 질 곳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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