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나 SNS를 하다 보면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글을 쓰는 방법, 순서, 독자가 글을 읽게 만드는 요령, 쓰지 말아야 표현, 고쳐야 할 습관 등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듯이 '~해야만 한다.'투의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글을 보면 호기심 많은 나는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몇 권의 책을 얼마나 읽었을지, 고뇌에 찬 탈고를 몇 번이나 해봤는지 알고 싶어 진다. 나는 특정인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지식과 지혜가 풍부한 선생이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다만, 함부로 가르치는 것에 반대한다.
SNS가 발달하면서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인플루언서가 되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선생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만큼 배움에 신중해야 하는 세상이기도 한다. 글쓰기의 기본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경험 몇 번에 글을 이렇게 쓰세요라고 함부로 가르치는 선생이 불편하다.
독자를 만드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독자란 필요한 글, 좋은 글에 따르는 선물이자 보답일 뿐이다. 물론, 진심을 다했다고 그 마음만큼 독자가 따르지는 않을 수 있다. 작가에게는 그것조차 고뇌의 의문이며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보냐?'는 표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독자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글은 독자를 그런 식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개성 없이 잡다한 기술로 독자가 만들어진다면 작가가 왜 필요한가.
블로그에 글을 쓸 때 필요한 약간의 기술은 작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나 고쳐야 할 습관이 있다는 것에도 반대한다.
책을 읽을 때 나는 화려한 언어의 기술을 보지 않는다. 존중받아 마땅한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어떤 문구에 반해 읽기는 하지만 그것에는 독자를 끌어드리고자 하는 음모가 심어져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런 언어는 한두 번에 금방 들통이 난다.
좋은 책은 작가의 습관과 독특한 문체 등에서 탄생한다. 독자와의 공감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글솜씨, 느낌, 감정이 들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흔히 말하는, 소 없는 찐빵과 같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쓰지 마세요!'라는 가르침은 새싹도 트지 못한 꽃을 꺾어 버릴 수도 있다.
책 한 권을 읽은 선생이 가장 무섭다.
소양을 쌓지 못한 선생이 위험한 것은 진심으로 그 선생의 글을 섭취하고 토해내는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일상적으로 고민을 토로하는 특별한 지인이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답을 주려고 노력한 적이 많았다. 나에게 말하는 목적이 답이 필요해서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지인은 그저 친구가 필요했고 방향성을 잡고 싶었던 거였구나라고 나중에 깨달았다.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말기를 바란다. 권함과 가르침은 다르다. 내가 아는 한 움큼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가르치기에는 배우는 학생이 잃을 가치가 너무 무겁다.
글을 쓰면서 나의 문체를 찾아가는 길이 처음부터 참 험난하다. 길을 너무 어긋난다고 생각할 때 나는 책을 읽는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스승으로 삼는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요즘 확실히 독서가 늘었다. 읽다 보면 실타래 풀리듯이 부드러운 선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보물 찾듯이 그 작가의 비밀을 캐려는 듯 호기심에 찬 눈으로 읽기도 하고 그저 빠져들어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 무언의 가르침을 받는다.
글선생이여, 조언을 아끼기를 바란다.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그것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올바른 가르침이 되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