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누구가 글감에 욕심이 있고 그 글감을 나의 언어로 잘 풀어낼 때 만족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나 역시 글감이 떠오르면 글로 옮겨 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가을의 아름다움을 글에 담고 싶다면 단풍, 낙엽, 바람, 은행나무 등을 공중 부양 시키듯이 천천히 들어 올려 글의 목적에 맞게 귀착시킨다. 그렇게 쓰인 글은 허둥지둥 헤매지 않고 한 번에 짜임새 있게 써지는 경우가 꽤 있다.
문제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이다. 하루에 몇 편의 글을 쓰든, 십 년에 몇 편의 글을 쓰든 똑같이 글감에 대한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글감을 다루는 문체나 글의 깊이가 다른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본다. 글을 쓰고 싶은 날에 글감이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그저 문장을 한 줄 적는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쓰지?'라는 질문을 아예 배제한다.
완성도 없는 반쪽짜리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지 않는다. 전체글을 생각하면 겁을 먹어서 더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담아 한 문장을 쓰고 또 한 문장을 쓴다. 중간중간에 첫 문장과 다음 문장 간의 문맥만 확인한다. 다음 문장은 다시 세 번째 문장이 되고 세 번째 문장은 다시 네 번째 문장의 처음이 된다.
그러다 보면 톱니바퀴 돌듯이 문장이 엉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을 트기 시작한다.
시골의 비포장 도로를 걷다 보면 흙먼지도 날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돌부리도 있고 갈래길도 많이 나온다. 문장끼리 엮다 보면 목적지는 알 수 없고 흙먼지를 먹어 입속이 까끌거리거나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큰 그림을 생각하지 않고 퍼즐을 맞추다 보면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길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면 된다.
숲에 나무를 심을 수도 있지만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 수도 있다.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휴식을 할 때 가끔 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퍼즐이 무조건 그림 맞추기라고 생각해서 표본을 곁에 두고 맞는 그림을 찾아 컷팅된 조각을 골랐다. 그러다가 그림보다 먼저 비슷한 모양의 조각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큰 그림에서 조각 하나를 들고 어디로 갈지 몰라 사각판을 헤매던 때보다 맞추기가 수월했다. 비슷한 색상의 조각들을 한 데 놓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일은 수월해졌다. 글을 쓰다가 난관에 부딪히거나 글감이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그렇게 퍼즐을 맞추듯 글을 시작한다.
숲에 나무를 심을 수도 있지만 나무를 심어서 숲을 무성하게 할 수도 있다. 일단, 첫 나무를 첫 길에 심는다. 걸음을 옮겨 가며 나무의 수를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숲의 언저리에 닿는다. 그 쯤에서 돌아보면 키 높이도 다르고 알록달록 촌스럽기도 하지만 서로 잘 어우러진 숲의 그림이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정성스럽게 심어 본다.
글감이 아무리 좋아도 큰 그림이 아무리 멋져도 글이 맞물리지 않으면 졸작이 된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라도 문장을 일단 시작하는 연습을 한다. 어우러짐이 좋은 문장이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하나의 문장을 연결하고 둘의 문장을 연결하고 세 문장이상을 연결해 문단을 만들고 어긋나지 않게 다시 다음 문단으로 넓혀 가야 하기 때문이다. 훗날 완성도 높은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그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작가는 한 문장에 매달리지 말고 일단 쓰라고도 한다. 쓰다 보면 글의 실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짐작한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거든 일단 한 문장을 적어 보자. 그 한 줄이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