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놀이

글을 쓰는 모든 과정은 놀이 안에 존재해야 한다.

by 보나쓰
글놀이를 한다.


글을 쓰자고 앉아 공백을 보면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고개를 듣다.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 열었지만 무엇을 쓸지 망막하기도 하고 어떻게 쓸지 겁나기도 하고 잘 써질지 설레기도 한다.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한 시간 전, 십 분 전, 십 초 전의 기분과 흡사하다.


일단, 첫 문장을 쓰면 망설임 없이 나를 내려놓는다. 생각나는 그대로를 글자로 옮겨 간다. 걸러지지 않은 글의 흐름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나는 이 과정을 좋아한다. 글이 살아서 숨 쉬는 듯 열손가락을 여기저기 끌고 다닌다.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인다. 거기에는 어떤 순서도 이성도 없다.


길이 완전히 잘못 들 때도 있다. 무심히 되돌아가기를 한다. 길은 다시 찾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놀이처럼 글을 써간다.


영감을 얻다


글에는 작가의 성품과 감정이 실려있다. 무게가 실린 글은 독자에게도 무게가 실린다. 화가 있는 날에 쓴 글은 뾰족한 단어를 심기 마련이다. 현실도피를 갈구하는 작가는 역설적으로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결과물을 낼 수도 있다. 현실에서 풀어내지 못한 작가의 고뇌가 작품 속에서 승화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소한 글이라도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감정을 잘 정화해야 넋두리가 아닌 글이 나온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기 전 내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실내를 밝히고 음악을 트는 것이다. 가능한 쇼팽의 녹턴이나 파가니니의 카프리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듣는다. 내게 심리적 안정과 영감을 주는 곡들이다. 글을 쓰다가 잠시 음악에 심취할 때가 있다. 나는 그것조차 몇 번이건 상관없이 글 쓰는 과정에 넘나들도록 허가한다. 그들은 내게 삶을 전이하고 감정을 전이한다. 그로부터 영감을 얻는 모든 순간이 진심으로 기쁘다. 곡에 담긴 열정은 마치 어둠의 자식 같아서 감정 저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열매를 따먹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그 위대한 곡들을 언급하게 될지 모르겠다.


아무리 올가미를 채워도 글이 잡히지 않아 어느 날 음악을 들으면서 단어를 적고 문장 잇기를 하면서 놀던 것이 리듬에 맞춰 글을 쓰고 영감을 얻는 글놀이가 되었다. 틀이 잡힌 글쓰기 습관이 되었다. 나는 무엇이든 그렇다. 재미가 없으면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읽히지가 않고 식상한 이야기라도 재미가 있으면 귀 담아 듣는다. 재미를 잃는다면 글을 쓰는 일도 평생의 친구가 되긴 힘들 것이다. 글을 쓰는 즐거움도 외로움도 고뇌도 놀이 안에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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