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읽다 보면, 글을 오래 쓰다 보니 글감이 마른다는 내용의 글도 종종 만난다. 처음에 그런 내용을 읽었을 때는 오랜 작가의 엄살이라 보고 가벼이 넘겼는데 다시 몇 번을 더 만나니 그것 또한 힘들겠구나 하고 동정심이 생겼다. 글을 오래 쓴다고 해서 글감이 쉽게 잡히지는 않는 모양이다.
글의 소재란 무형의 존재이기도 하고 형체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수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작가가 생명을 불어넣는 소재란 우주까지도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소재가 바닥이라는 건 그 작가의 소우주에서의 소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아는 삶 내에서 소재를 찾고 글을 엮어가기 때문이다. 삶 속에는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넘쳐 나지만 내가 접하는 이야기는 한정적이다.
우리는 가을이 올 때마다 다른 감성을 이야기할 수 있고 비가 내릴 때의 흙냄새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당장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해야 한다는 건 정말 답답하고 슬픈 일이다.
소재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사실 나는 여전히 하루종일 노트북을 곁에 두고 있어도 글이 안 써질 때가 많다. 당연히 소재에 대한 고민은 매일의 숙제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재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소재를 표현하는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소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 처음부터 글을 후다닥 써버리는 건 일단 실패이다. 한 줄 위에 한숨이 또 한 줄 위에 한숨이 켜켜이 쌓이면서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몇 가지 결심을 했다. 그중의 한 가지는 하루의 첫 글을 무작정 쓰자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몇 편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한 자도 나갈 수 없지만 잘 써지는 날에는 몇 개의 에세이를 가볍게 쓰기도 한다. 당연히 수정을 많이 거쳐야 하는 초고이다. 첫 글은 무조건 소재 없이 목적 없이 시작을 한다. 글은 때때로 소재를 알아서 불러오기도 한다. 손길 가는 대로 쓰다 보면 소재가 당겨 오는 때가 있다. 그럼 거기서 물길을 바꾸듯 자연스럽게 흐름을 탄다. 어느 날은 어제와 비슷한 시작을 하기도 한다. 상관없다. 마지막 원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몇 편을 쓰겠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는다.
몇 편을 쓰자고 작정하지 않는 이유는 주어진 소재에 따라 글 1, 2, 3... 을 채워 목적을 달성했을 때 성취욕은 있겠지만 다다랐을 글의 깊이가 의심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의욕은 달성이 되었을 때 허무함이 함께 올 가망성도 크기 때문이다. 자진해서 슬럼프를 부르는 일은 삼가고 싶다.
또한, 스스로 막아놓은 울타리 안에서 글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맘에 편하지가 않다. 나는 일 년에 1000편의 글을 쓰기보다 500편의 글을 쓰고 독서를 통해 내 영원의 허기를 채워주는 시간을 갖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삶은 긴 여행이고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글은 내 여행의 일부이다. 풍성한 소재도 글도 내 여행의 결과물일 것이다. 숫자에 연연하는 글이 풍요롭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 글이 족쇄가 된다면 나의 글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위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아쉽게도 나의 글은 아직 글 자체가 소재이고 목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의 나의 노력이 성장통일지 헛된 작가의 놀음일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글을 지속하는 노력을 한다. 언젠가 좋은 글감을 가지고 작가다운 면모를 갖출 것을 믿으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