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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May 12. 2024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슈가 생길 때 회피하는 걸 싫어하는데 어젯밤 갑작스러운 문자에 당황해서 그냥 모르는 체해버렸다. 가끔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그것이 좋은 마음이건 아니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럼에도 언제나 느린 답변이라도 하는 편인데 이번엔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나니 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어난 상황을 어찌할 수는 없고 생각에 빠져 들면 헤어 나올 방법을 모를 것이 뻔해 펜을 집어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몰두했고 어느새 그림 하나를 거의 완성했다. 얼마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지 목뒤가 뻐근하게 뭉쳤다. 햇살이 밝다. 폰을 켜고 날씨를 보니 쾌적한 20도의 온도를 유지할 거라고 한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생각을 일단 착착 접어 두고 거울을 잠시 들여다본 후 플레어 원피스를 꺼내 입고 재빨리 차키와 노트북, 책 한 권을 챙겨 집을 나섰다. 햇살도 적당하고 바람이 있어서 달리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은 상쾌해진 상태로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를 오려고 한 건 아닌데 달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카페 근처까지 와버렸다. 어차피 계획 없이 나왔으니 어느 곳에 머물건 상관은 없었다.


일요일이라 혼잡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테이블이 넉넉하게 비어 있었다.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주문하고 테이블을 잡고 앉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 한쪽 뇌에서는 여전히 어젯밤의 문자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인 것은 그 생각이 나를 앞지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아침에 그리던 그림 속에 잘 담겼나 보다. 멍하니 화창한 뷰에 눈길을 두다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나는 얼른 받아 휘휘 저어 얼음을 녹인후에 부리나케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커피가 내 몸을 타고 내려가는 걸 느끼면서 만족감이 생긴다. 생각이 체했을 때는 시원한 커피 한 모금도 도움이 된다.


노트북을 열고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생각은 글로 옮겨갔다. 그렇게 조금씩 생각은 이리저리 치이다가 저녁쯤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는 그제야 어젯밤 문자에 대한 답변을 조심스럽게 보낼 수 있을 듯싶다. 미안하다고 시작할지 감사하다고 시작할지 뭐라고 시작할지 오리무중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다해 답글을 보내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다.


나는 오늘 적어도 벌어진 일을 왜곡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읽고 처신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생각과 감정을 보내줄 시간이 되면 물속에 고기를 놔주듯이 새장 안의 새를 풀어주듯이 그렇게 놓아줄 것이다. 아슬아슬하던 마음이 좋은 날을 만나 다행이다. 보슬보슬 비라도 내렸으면 감정이 어디로 쓸려갔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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