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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May 10. 2024

새벽부터 황혼까지

오늘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스웨덴 국립박물관 컬렉션 '새벽부터 황혼까지'를 감상하고 돌아왔다. 실사 같은 그림에 놀랐다기보다 평화롭고 조용한 세계로 잠시 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곳은 시간도 흐르지 않고 과격함도 흥분도 없는 그저 머물러 있는 고요 그 자체였다. 서두를 것도 파이팅을 외치며 뛰어들어야 할 세상도 없이 존재했다.

요한 프레드릭 크루텐 <린세핑의 정원에서>
한나 파울리 <아침식사시간>
브르노 릴리에포르스 <여우가족>


그림을 보는 동안 생각나는 스친들( threads.net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림들을 따로 찍어 집에 돌아온 뒤에 한 장씩 보내 주었다. 글만으로 나를 이해해 주고 그 자체만으로 친구가 되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좋은 것을 보아도 기쁜 일, 슬픈 일이 있어도 요즘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공간 스레드 그리고 스레드인들과 나의 오늘에 대해 자주 소통한다.


그림을 보내주는 나의 마음은 그들이 오늘도 편안했으면 하는 거였다. 내가 누리고 있는 그 순간의 행복함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늘 그림들이 그랬다. 함께 머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모두의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의 제목은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었다.

전시명 '새벽부터 황혼까지'는 "동이 튼 예술적 혁신이 예술적 성숙의 황혼기와 민족 낭만주의로 무르익을 대까지"라는 상징을 내포한다. 본 전시는 당대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이 직면한 현실을 드러내며 국제 부대에서 연마한 그들의 표현법이 귀향 후 모국의 정체성과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북유럽 특유의 예술 확립으로 귀결된 여정을 보여준다.

예술과 현실과 나는 언제나 괴리감이 있다. 나는 전시명을 읽으면서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 시간에도 노동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멋진 나의 스친들의 피곤한 새벽과 고된 황혼을 생각했다.


예술의 세계에서 내가 직면하고 있는 않은 세상을 맞닥뜨릴 때 감동을 얻는다. 그것은 무한대의 우주적인 감정일 수도 있고 외면하며 살고 있는 삶의 어느 지점일 수도 있다. 그 감동은 기쁨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다. 고마움일 수도 있고 미안함일 수도 있다.


그림 속에서 생활은 너무나 평안하게 빛났다. 텅 비어있는 눈빛을 외면하지 못해 잠시 머물러 서 있었던 힐데가르드 토렐의 '애도하는 여인'을 제외하고는 산책하듯 거닐게 만드는 그림들이었다. 그저 파묻혀 있고 싶기도 했다. 생활이, 세상이 그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건가 생각했다. 그것이 오늘 나의 감동이었다.


힐데가르드 토렐의 <애도하는 여인>

삶은 예술과 같지 않지만 예술보다 치열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예술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흔들렸던 오늘이다. 오늘 그림에 담아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스친들에게 얼마나 전해 졌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이 되어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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