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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Jul 06. 2024

소음

서너 명의 세네 살배기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 같은 대화가 카페 안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일곱 살 정도의 아이는 카페의 구석구석을 알씨카의 서킷으로 활용 중이다. 그 아이들보다 더 어려 보이는 여아는 달리는 자동차를 잡겠다고 3옥타브의 고음을 지르며 걷는 건지 달리는 건지 모를 모습으로 뒤뚱거리며 뒤따르고 있다. 그 아이들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놀이동산이 되어가는 카페를 휘잡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구원자가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엄마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세 명의 여자가 제각각 목소리를 높여가며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소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중의 한 여자가 엄마겠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이 궁금하지 않다. 뇌가 머리를 가르고 나와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나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적시고 아이팟을 귀에 꽂았다. 이런, 외부의 소리가 섞여 음악소리도 소음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 나는 테라스 쪽 문을 열고 후끈한 공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 문을 꼭 눌러 닫았다.


소리가 조금은 기가 죽었다. 눈앞에 펼쳐진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에는 어떤 소리도 없다. 바람조차 없는 테라스에서 뒤를 돌아보니 카페 안에는 여전히 무작위한 아이들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소리가 줄어드니 카페 안의 풍경이 조금은 두렵지 않아 졌다. 나는 방관하며 너그러워질 수도 있을 듯하다.


소음의 주동자들은 순수하고 버릇없다. 그들은 무지하며 그 무지는 계획되지 않았다. 그들은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의지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을 견제하는 그 부모의 엄한 영향력이 없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속에 머무를 것인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무법자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카페의 노예가 되어 내 예민함을 벗어던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먼저 내 몸속에서 들끓는 짜증을 잠재우며 강물을 들이켜고 초록이 무성한 산을 안는다. 결정장애로 머뭇거리는 사이 테라스문이 열리고 꺄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몰려온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다시 카페로 들어와 자리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한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제 테라스를 누비는 그들의 움직임에 소리가 없고 귀를 타고 내 몸으로 울리는 음악은 비로소 음악이 되었다. 내 고요는 언제나 내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핏셋으로 집어 올리듯 온갖 소리를 내 주변으로 끌고 와 눈으로 소리를 확인하며 가슴까지 끌어올려 끝내는 화를 내며 피곤해하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세상 속에 살고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너무나 당연하다. 자연스러운 광경에 누군가의 무지와 무례함때문에 나를 찡그리는 일은 늙어가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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