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책을 읽을 때 나는 줄거리보다 문장에 집중한다.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보다, 어떻게 이야기를 건네는지에 먼저 눈길이 간다.
때로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 작가의 태도와 온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소설에는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단단한 문장보다 매끄러운 이야기만을 좇는 책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무감각해진다.
요즘은 에세이도 스토리가 있어야 잘 팔린다고 한다.
누구의 삶인지, 어떤 서사가 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를 따라가는 구조.
독자들이 그것을 읽고 싶어 한다는 걸 이해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쓰는 글은 돌틈에 피어 있는 작은 꽃 같다.
눈에 잘 띄지는 않아도, 가까이 다가가면 작고 선명한 향이 남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책이 예술이라고 믿는다.
형체가 뭉그러진 추상화에서도 마음이 움직이고,
단조로운 선만으로 완성된 그림에서도 전율이 오는 순간이 있다.
문장도 그렇다. 뜻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동이 있다.
좋은 문장은 한 장면처럼 남는다.
그 장면은 곧 내 마음의 풍경이 된다.
나를 스쳐간 감정과 연결되었거나, 나조차 모르던 나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은 내가 모르는 내 마음에 조용히 불을 켜준다.
몇 달 전부터 새벽에 눈을 뜨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책 한 귀퉁이에서 마음을 붙잡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나는 책을 덮고 그 문장만을 오롯이 바라본다.
그대로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글.
그 아까움이 쌓여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 문장을 남기기로 한다.
그 문장이 내게 남긴 의미나 의문을 적는다.
작가의 필력이 응축된 문장이라면,
나는 더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그 문장에 심취할 것이다.
그 문장을 받아 적은 나의 시간과 기억,
내면의 반응을 조용히 들여다보려 한다.
요즘 내 일상에는 다행히도 큰 걱정이나 거슬리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더 자주,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삶에 의문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자주 묻는다.
질문은 항상 남고, 답은 좀처럼 도착하지 않는다.
책은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아주 드물게 어떤 책은 조용히 길을 열어준다.
책을 읽으며 나는 머리와 가슴을 비운다.
비워낸 뒤에야, 생에 눅진하게 남아 있던 덩어리들을 걷어낼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때로는, 다시 채워 넣을 명안을 얻기도 한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속 문장에서도 저릿한 울림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내 삶 어디쯤에서 마주쳤던 기억이 반응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사랑이 식었다고 느낄 때,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이 되살아날 때,
나는 어떤 문장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선다.
이제 나는 좋은 책 속에서 지혜로운 문장을 만나러 간다.
여행길에 마주칠 책들은 제각각이겠지만,
그 안에서 미사여구가 아닌 진심 어린 문장을 건져내어
마음 한 켠에 조용히 모아두려 한다.
오늘의 문장은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