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슬픈 일은 잊으렴. 인생은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면 돼.
P.131 ' 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사토 아이코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적 시대를 배경으로, 평범한 유대계 이탈리아인 귀도가 수용소 안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펼치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초반은 귀도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 그리고 도라와의 사랑이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가족은 나치 수용소로 끌려간다. 귀도는 어린 아들에게 현실의 참혹함을 감추기 위해 모든 상황을 ‘게임’으로 바꿔 설명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아들에게 웃음을 주며 떠난다. 자식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는 한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과 용기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다.
“슬픈 일은 잊으렴.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면 돼.”라는 문장은, 살아남은 귀도의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아픈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살다 보면 아프고 고독해서 잊지 못하고 안고 가는 것들이 생긴다. 때로는 풀어내야만 하는 숙명 같은 문제들도 있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남는 건 견뎌낸 시간과 다시 살아갈 용기뿐이다.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것들은 여러 가지다. 부모님의 격려, 자식에 대한 애정, 누군가의 희생. 이런 것들은 대개 좋은 기억으로 남고, 인생에서 값진 마음이 된다. 때로는, 겪지 않았어도 좋았을 가슴 아픈 기억이나 누군가의 횡포 역시 기이하게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앙심을 품고 보복하려는 마음이 일시적인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지는 마음이다. 더 큰 힘은, 고통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데서 나온다. 내 의지로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혹은 어떤 상황으로 인한 고통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결심이 생을 더 강하게 끌어당기기도 한다. (말할 수 없는 힘든 기억을 안긴 사람에 대한 옹호의 변이 아님을 밝힌다.)
그렇게 이겨내고 나와 내 인생을 다시 찾은 뒤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온다. 인생에서 ‘승리’라는 건 허무할 때도 있고,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인생을 회복하고 나면 아름답게 살아가면 된다는 건 정말 옳은 말이다. 힘들었던 시간이 주어진 건, 인생이 더 아름다워지려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흉한 일이 있으면, 내 부모는 보지 말라고 멀리 있으라 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당연히, 나는 도망치라 말한다. 그럴 수 없다면, 지난 후에는 마음속에서 지워내고 살아가야 한다. 생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슬픈 일은 잊으렴. 인생은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면 돼.’라는 문장은 전후 일본에서 혼혈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사회사업가 사와다 미키와 닿아 있다. 사토 아이코는 글 중에 사와다 미키에 대해 언급했다. 미쓰비시 창업자의 손녀로 태어난 그녀는, 전쟁 후 미군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버려지는 현실을 목격했다. 사와다 미키는 자신의 집과 재산을 내놓아 ‘엘리자베스 샌더스 홈’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하고,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미쓰비시라는 기업이 일제강점기와 전쟁 시기 한국인 등에게 저지른 강제동원과 착취의 역사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와다 미키는 전범기업의 손녀였지만, 일본 사회 내에서도 드물게 경계와 편견을 넘어선 인도주의적 삶을 살았다. 그녀는 한국 혼혈아를 구제하고 입양에 도움을 주기도 한 인물로, 자신의 특권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했다.
사토 아이코는 성장을 해서 돌아온 혼혈 청년에게 미키가 건넨 말을 인용했다. “슬픈 일은 잊으렴.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면 돼.” 그 위로는, 아픔을 품되 그에 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인생의 조용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아픔은 기억해야 하지만, 살아가면서 반드시 그 서글픔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인생은 길고,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