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뿐인 내 삶,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by 보나쓰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아라
P.11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나태주

예전에 미국 유학 시절, 케이코라는 일본인 여학생을 알게 되었다. 케이코는 흔히 말하는 ‘도회적이고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일본에서도 헤어스타일과 패션 감각이 뛰어난 편이라고 했고, 그래서인지 동기들에게 칭찬을 자주 받았다. 그런 케이코가 어느 날 입이 삐죽 나온 채 내게 다가왔다. 이유를 묻자, 지난주에 일본에서 온 다른 여학생이 자신의 스타일을 따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네가 예뻐서 그래. 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케이코가 말한 그 학생은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보다 나이가 조금 어렸고, 외모가 특별히 두드러진 미모는 아니었다. 그날 이후 케이코는 그녀를 만난 날이면 거의 울듯이 짜증을 내며 험담을 쏟아냈다. 솔직히, 나 역시 내 주변 사람이 나처럼 입고, 말하려고 애쓴다면 썩 유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늘 케이코의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근처에서 도서관 쪽으로 가는 케이코를 발견했다. 반갑게 그녀를 부르며 달려갔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는 케이코가 아니었다. 케이코와 똑같은 머리, 비슷한 옷, 비슷한 신발, 심지어 말투까지 따라 한 ‘아바타’였다. 순간 소름이 돋아, 가볍게 인사만 하고 황급히 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마도 그 학생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 실례가 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이왕이면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따라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케이코의 두통거리가 되고 말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탓이거나, 애초에 주체적 영혼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를 따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르면, 나 자신도 되지 못하고 남도 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정신적으로 소멸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입고, 먹고, 행동하는 모든 면에서 ‘내가 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곧 개성이다. 그 개성은 나를 나답게 만들고, 때로는 타인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태주 작가의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아라”는 문장은 내게 따끔하게 종아리를 맞은 듯한 기분을 남겼다.


그러다가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하시던 아버지의 심지 같은 말로 생각이 옮아간다. 아버지는 가족을 이루고 평생을 몇 평이나 됐을까... 사각의 공간 안에서 거의 쉴 새 없이 일하다가 돌아가셨다.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삶은 좁은 사각형이 되었을 거다. 내가 유학을 떠나던 날에도 잘 다녀와라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눈물을 참으시던 아버지였다. 그 잠시의 이별이 아버지의 가슴에 구멍을 냈을 거란 걸 나는 안다.


아버지가 내게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시는구나... 생각하게 한 건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혼자라도 괜찮다. 즐겁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 그건 아마 아버지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담보로 했던 자신의 희생이 보다 값지게 완성되지 못한 회한에서 나온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나처럼 살아라'라는 경우가 있기는 할까마는 내 부모가 행복하지 않았구나... 하는 아픈 마음은 지금까지도 생각날 때마다 가슴을 저미게 한다. 조금 늦었지만, 나는 요즘 아버지의 유언 아닌 유언 같은 말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겠지만 지금도 내 마음이 아버지와 같은 사각의 공간에 갇혀 잊지 않으니 그것으로 증명이 된 건가 생각한다.


나태주의 문장을 통해 두 가지의 다른 회상을 하며 덕분에 내 정체성과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장을 넘기다 찾아내는 이런 문장에 잠시 잠깐이라도 쉬었다 갈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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