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을 뿐이라고

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by 보나쓰
왜 내 생활 습관을 굳이 바꿔야 하지? 아들딸은 나를 거동도 못하는 노인네로 보는 걸까? 왜, 아예 간병인이라도 붙여주지? P. 97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끄 드 뷔르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쾅 맞은 느낌이다. 『체리토마토파이』의 주인공 잔은 90세다.
“왜 내 생활 습관을 굳이 바꿔야 하지? 아들딸은 나를 거동도 못하는 노인네로 보는 걸까? 왜, 아예 간병인이라도 붙여주지?”
이 문장은 잔의 딸이 생활습관에 간섭하는 데 대한 그녀의 투정이다.


내 엄마도 지방에 혼자 사신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동생의 아이들을 돌보러 서울에 계시다가,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리가 살던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주 가끔 엄마를 보러 간다. 그것도 자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당일치기로 다녀온다. 그렇다 보니 내려가서 보면 사실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지만, 잔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대신 예쁜 장을 사서 들여드린다거나, 가끔 전자제품을 바꿔드리는 식으로 내 불만을 충족시켰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겨울에 수영장에 다니실 때는 머리를 잘 말리시라고 하고, 더운 날엔 게이트볼을 쉬시라고 하고, 무료하다고 나가시는 아르바이트도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텃밭 가꾸는 일도 줄이라고 했다. 침대 위치도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리곤 했다.


어쩌다 한 번씩 들여다보면서, 정말 오지랖이었다. 엄마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분만의 루틴을 만들고, 즐겁게 노년의 생을 살고 계셨는데, 나는 내 인생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군말이 많았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는 이미 노인이고, 노인은 아이와 같아서 내가 끼어들어 이것저것 바꿔놓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휴, 내가 알아서 해. 나 좋을 대로 하련다. 난 혼자서도 씩씩하고 다 잘해.”
내가 흘려들었던 그 말은, 어쩌면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린 딸에 대한 반항이었으리라.


엄마는 젊어봤지만, 나는 엄마만큼 늙어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삶과 실제로 엄마가 살아가는 삶에는,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간극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나는 엄마의 나이보다 엄마를 더 나이 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치매노인처럼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엄마는 나보다 잘하는 게 훨씬 많다. 대중교통도 나보다 더 잘 이용하고, 텃밭에 체리나무도 심으시고, 운동도 나보다 더 많이 하시고, 집도 수리하실 줄 안다. 나는 전구 하나 내 손으로 갈 줄 모른다.


누구든 늙고 싶을까? 늙는 것도 서러운데, 함부로 생활불구자로 대하지 말자.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세계를 함부로 바꿔놓으려 하지 말 것.
그들은 그저, 늙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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