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P.53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 달라는 말일 수 있어.’
소설 속 인주가 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뛸 듯이 기뻤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놀라고, 의아해하고,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을지, 혹은 이미 사랑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때로는 그의 물욕보다 강한 소유욕에 몸을 떨기도 했다.
내가 처음 고백을 받았던 건 스물한두 살 때였던 것 같다. 남들은 첫사랑에 대한 모든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모든 것이 어렴풋하고 그의 얼굴과 첫마디만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헤어질 때, 그의 집 앞을 찾아가고, 집에서 걸레질을 하다가 성당 종소리에도 울었던 걸 보면, 많이 사랑했던 것 같긴 하다. 그랬지만, 나는 그조차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두통과 불안을 느꼈다.
"사랑해"라고 응답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수없이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것 같다.
당신은 누군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어떤 이는 종소리가 들렸다고 했고, 어떤 이는 너무 좋아서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이제 결혼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세상에 ‘사랑한다’라는 표현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더 다정하고 따뜻하고 위대한 단어는 없을 것 같지만, 소설 속 인주처럼 내게도 사랑은 정말 많은 질문을 가져왔다.
나는 누군가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에 대한 책임감과 불안과 의무감, 그리고 부연되는 설명까지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 말이 가져오는 파장이 결코 잠깐의 진동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요즘 나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지 않고 산다. 그 감정조차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린 건지, 이제는 잊고 사는 것도 같다. 가끔은 그 말이 고프고, 또 가끔은 다행이다 싶어 안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