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익숙해지나요?

특별함을 주는, 평범한 문장들

by 보나쓰
희한하게도 세월이 갈수록 죽음 앞에서 초연해진다. 심지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조차 그렇다. 사별도 많이 겪어보면 익숙해지는 걸까. P.151 '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내가 처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느낀 건 셋째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다. 어릴 적에도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 삶이 이어졌겠지만, 나는 그때까지 ‘죽음’이라는 말을 또렷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외삼촌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까만 피부에 키가 크고 멋진 분이셨다. 외갓집 식구들은 모두 피부가 까만 편인데,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가 가장 희지 않나 생각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왜 어른들만 장례식에 다녀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이유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내게 실감나지 않았다. 원래도 자주 뵙지 못했던 분이라, 오히려 어린 시절 나를 예뻐해 주던 기억만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넋을 놓지는 않았지만, 장례 절차를 모두 지켜볼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못했다. 심약해져 까무러칠까 봐, 가족들은 나를 조용한 곳에 앉혀 두곤 했다. 그 뒤로, 첫째 큰어머니, 둘째 큰아버지, 셋째 큰아버지, 그리고 첫째 큰아버지까지 아버지의 모든 형제들이 한 분씩 세상을 떠나셨다. 가장 비극적인 죽음은 정 많던 큰 외삼촌과의 이별이었다.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유를 내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지만, 억울한 죽음이었기에 가슴이 많이 아팠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어른들을 떠나보냈다.


가족들의 죽음이 익숙해진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드는 생각은 아픔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너무 아프고 슬프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되고, 안쓰러움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죽음 뒤에 세상이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자꾸만 이렇게 말하게 된다. “아버지, 나중에 봬요.” “나중에 봬요, 나의 아버지들.”


산다는 게 참 즐겁고 아슬아슬해서 심심할 틈이 없는 거지만, 끝이 있다는 건 항상 슬프다. 내 삶에 끝이 있다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끝이 있다는 게 더 슬프다.


죽음이 죽을 때까지 어색하고 두렵겠지만, 어른들을 떠나보내며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내가 남겨 놓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나 때문에 슬퍼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언니가 페암에 걸렸단다." 나는 오늘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가장 즐겁게 보낸 시간이었다. 삶은 참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방금 한 말을 후회하게 하고, 뒤통수를 후려친다. 나는 다시 '죽음'에 대한 일차적인 공포를 느끼며, 이 상황에 내가 뭘 해야할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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