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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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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May 23. 2021

둘째의 성별

첫째는 아들이었다.  남자형제가 없었던 남편은 형제가 생긴 것처럼 아들을 기뻐했다. 양가 어른들은 그저 첫 손자를 기뻐하셨다. 첫째 임신 16주차 때 초음파에서 선명히 성별을 확인했던 난 별생각이 없었다. 성별보단 나의 임신과 출산 자체에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 성별은 그 누구보다 내가 궁금하다. 딸이면? 아들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에 잠긴다.

형제가 다섯 살 차이니 친구처럼 같이 키우기는 틀렸다. 그렇다면 딸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엄마는 딸이 있어야지.’라는 말에는 동감하지 않지만 소소하게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생길 것 같긴 하다. 혼자서는 절대 써지지 않는 면 생리대를 같이 써봐야지. 목욕탕과 수영장 탈의실을 둘둘 들어가 봐야지. 무엇보다 성별이 다르면 자의타의로 형제가 비교하는 일도 적지 않을까 싶었다. 서로의 기질과 역량이 다른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생김이 다르니 자연스럽게 ‘다름’을 인정할 것 같았다. 물론 5년 가까이 모셔둔 첫째의 물건들은 거의 활용하지 못한다. 육아 경력자지만 직군이 다르니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반면 둘째도 아들이라면 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 계절이 안맞아 한두 번 입혔던 옷도 많았고 모든 육아 용품과 장난감이 남아 특화다. 몇 년만 키우면 남자 셋이 공하나 들고나가 노는 꿈도 꿀 수 있다. 무엇보다 쌓아온 육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아이의 성향이야 다르겠지만 '남아'라는 빅데이터는 응용할 수 있다. 여름 생식기 관리 방법이나 배변훈련시키는 방법, 자동차나 공룡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보여줄 놀잇감이나 남자아이의 특유 화법 등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성별이 같으면 아무래도 서로를 비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동생은 형의 역량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로 인해 좌절을 느끼거나 과한 승부욕이 생기지 않을까.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는 '동생이 형보다'라는 비교의 말이 형이라는 이유로 더 크게 스트레스가 되진 않을까. 걱정을 사서 하는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난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 있는데 다행히 사이가 좋은 편이다. 형제가 있어 가장 좋을 때는 엄마아빠 이야기를 할 때다. 과거 우리가 아직은 부모에게 완전히 속해 있던 기억을 함께 나눌 때 편하고 좋다. 아무런 설명 없이 몇 마디로 과거를 공유하는 것이 나이를 먹을수록 소중하다. 우린 행복을 함께 하고 불행은 연대하며 극복했다. 나에게 형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추억할 소중한 사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사이가 되길. 엄마아빠 이야기로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 많이 주는 부모가 되길. 


시간이 흘러 둘째도 성별 확인이 가능한 주수가 되었다. 두근두근. 

"어? 선생님! 저거? 저거 맞죠?" 

그렇게 난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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