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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찻집 티레터 9호] 쓸모없음의 쓸모

일상찻집 Tea Letter 009
쓸모없음의 쓸모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일상찻집 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티클래스는 차를 배우기 시작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입문반 원데이클래스도 있고, 차를 제대로 배워서 활용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티마스터 자격증반 클래스도 있고, 차와 음식의 페어링을 즐기는 다회도 있고, 일상찻집의 모든 자격증을 마스터하신 후 그래도 차를 함께 마시고 싶고 더 배우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티테이스팅클럽 모임도 있습니다.

이렇게 수업을 하고 나면 차를 우려내고 나오는 젖은 찻잎이 최소한 7~8가지는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엽저라고 하는데요, 특히 등급이 좋은 차들은 시간 한정이 되어 있는 수업 때에는 몇 번 우려내지 못하기 때문에 차의 맛과 향을 여전히 머금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 우려낸 찻잎을 무엇에 쓰냐고 한다면, 저는 지금 같은 여름철에 냉침을 하여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상처럼 엽저를 유리병에 넣고 냉수를 가득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이만한 음료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냥 새 찻잎이나 티백을 찬물에 담아서 넣어두면, 우리가 차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효하고 유익한 성분들은 제대로 우러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에 이미 한 번 우려낸 엽저를 넣어 찬물로 냉침을 하면, 남아 있는 성분들을 다시금 흡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어줍니다. 더불어 카페인이나 강한 성분들이 다 빠져나갔기에 조금 더 부드럽게 즐기실 수 있지요.

저는 차를 마시고 나면 늘 엽저를 300ml 유리병에 넣어 물을 담아두었습니다. 축구를 하고 돌아온 아들, 시원한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딸, 그리고 신랑은 종종 냉침되어 있는 차를 꺼내어 마시곤 했습니다. 그런 생활이 17년 쌓이자 저희 집 냉장고에는 당이 과하게 들어 있는 주스나 탄산음료는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찻집 티클래스가 있는 날에는 수강생분들에게 텀블러를 가져오시라 하여 엽저를 넣고 찬물을 담아드리곤 합니다. 이미 차를 다 우려내어 쓸모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엽저를 여름철 알차게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다 쓰고 난 후의 엽저조차도 이러한 쓰임새가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의 쓰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스스로가 그 쓰임을 찾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혹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서 이처럼 나의 바른 쓰임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블로그 글쓰기를 통해 퍼스널브랜딩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저를 믿고 와주신 그분보다 삶의 경험이 더 길고 다양했던 저에게는 그분의 쓰임이 다양하게 보이더라고요. 얼마 전 저의 쓰임의 방향에 대해서 그분의 시각으로 따스하게 조언해주셨던 분도 계셨고 말이지요.

오늘도 우려낸 찻잎으로 아이스티 냉침을 하면서,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그리고 또 이 삶에서 나의 쓰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차 한 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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