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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 쿰바코남, 벨랑카니, 마두라이, 티루치라팔리

남인도여행

인도하고도 첸나이에서 삶의 터전을 시작하게 된 지 5개월 만이었다. 나는 인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고,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남인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우리나라에 남인도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의 모습은 전부 북인도 일부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6월에 시작하는 여름방학에 남인도를 한 바퀴 돌자고 다짐을 하고, 조금 긴 여행을 계획했다. 기사를 대동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남인도 자동차 여행. 남편은 염려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한다면 한다는 나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듯했다. 당시에만 해도 여자의 몸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간다는 게, 나에게는 정말 놀랍게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다들 인도 여행이라면 고개를 내저으며 엄청난 위험과 더러움이 도사리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는 그 어떤 남인도 여행에 대한 정보들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열심히 남인도에 대한 정보를 구글링하면서 나의 첫 번째 남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꿈꿨다.


이때만 해도 인도에는 3g가 막 보급되던 시절이라, 그나마 대도시였던 첸나이를 벗어나 구글 지도를 사용하는 게 용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점에서 구입했던 남인도 지도가 여행 내내 우리의 벗이 되어주었다. 여행 전날, 메헨디 콘을 구입해서 아이들과 내 손에 메헨디를 그리며, 나의 첫 번째 인도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당일 아침에는, 센스 있는 우리 기사가 내가 좋아하는 재스민을 차안에 걸어주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놀랍게도 인도의 하늘은 언제나 파랗고 언제나 쨍쨍하다. 내가 있던 남인도는 그랬다. 너무 맑은 날이 계속되어 우울한 날도 있었다. 쏟아져내리는 비와 구름이 그리운 날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날의 파란 하늘은 언제나 웰컴이다. 사리를 입고 릭샤가 미어터질 듯 타고 있는 인도 여인들을 바라보는 재미, 트럭보다 더 큰 나무를 한가득 싣고 기우뚱대며 달려가는 자동차,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한 번씩 등장해주는 소떼... 인도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기사의 누나가 살고 있는 쿰바코남이었다. 제법 부자에게 시집을 갔다는 기사의 누나는 우리를 집에 초대해 성대한 대접을 해주었다. 가족들은 모두 두 손을 모아 우리를 반겼고, 본인들은 바닥에서 밥을 먹어도, 우리만큼은 테이블 한가득 음식을 차려주었다. 개인적으로 모든 음식을 잘 먹는지라, 처음으로 먹은 인도 가정식은 나에게 행복감과 포만감을 가득 안겨주었다. 배불리 음식을 먹고 집에서 만든 짜이까지 얻어마신 후, 누나가 추천해주는 사리집에 가서 사리를 하나 마련하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여행을 계속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벨랑카니까지.


벨랑카니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으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큰 성당이 하나 있는데, 3개의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매년 2천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도의 성당들은, 유럽 성당이 지닌 웅장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더불어, 사리를 곱게 차려 입으신 성모 마리아님 상과, 이들의 힌두교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항아리에 담긴 우유를 바치는 모습이 어우러져, 인도만의 카톨릭 교회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오묘하고 신비한 인도 성당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기분은, 인도 곳곳을 여행다니며 찾았던 모든 성당에서 똑같이 느껴졌다. 인도에도 성당이 있다면서, 자그마한 손으로 성호를 긋던 딸아이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우리는 벨랑카니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기사의 종교인 이슬람교 사원인 나고레 두르가(Nagore Durgha)를 구경하고 마두라이로 떠났다. 이슬람교 사원 안에는 여자인 나와 딸은 들어갈 수 없고, 기사와 우리 아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21세기의 이런 모습을 상상조차 수 있었을까 하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며.


마두라이에는 남인도에서 가장 큰 사원인 미낙시 암만 템플(Meenakshi Amman Temple)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카메라와 휴대폰 모두를 두고 가야 한다. 성스럽디 성스러운 사원인 만큼, 사진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거대한 템플과 화려한 색감에 혀를 내두른다. 기둥 하나 하나, 벽 하나 하나에 새겨진 신상과 벽화들을 보며 그 웅장함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여행 중에 진정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의외로 소박한 곳에 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만나는 작은 사원들, 멋진 바위산을 끼고 세워진 투박한 템플, 그곳에서 만난 짜이집 아저씨, 결혼식을 위해 템플 안으로 걸어들어가다 외국인을 발견하고 사진을 요청하는 귀여운 커플...마두라이는 정말이지, 이것저것 구경할 게 정말 많은 도시였다. 다시 한 번 꼭 찾아가보고 싶었던 마두라이는 이날의 만남이 마지막이었지만,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니까.


그리고 첸나이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정이었던 티루치라팔리로 떠나는 날 아침. 하자가 양손에 풍선을 한가득 들고 나타났다. 차안에서의 지루함을 달래도록,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었던 알록달록 촌스러운 컬러의 풍선은 잊을 수 없는 따스함으로 추억된다. 여행길의 지루함을 달래줄 1루피의 행복. 그 작은 행복에 환하게 웃던 아이들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티루치라팔리에서 만났던 스리랑감 템플과 록포트, 그리고 역시나 멋지고 웅장하게 서 있는 세인트 메리 성당까지. 찬찬히 동네 구경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가 아이들과 여독을 풀어봅니다. 인도 여행 중에 예약하는 호텔들은 대부분 인도 로컬 호텔들로 일박에 3~4만원 정도 수준의 방을 예약하곤 했다. 진정한 배낭여행을 꿈꾸는 나였지만, 아직 만 3세, 7세밖에 안 된 아이들과 함께 하려면, 어느 정도의 위생과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도 물가를 생각했을 때 그 정도 수준이면 정말 훌륭한 시설의 호텔을 만날 수 있는데, 반드시 확인하곤 했던 것은 수영장이 있는지 여부였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엄마와의 인도 여행길을 달래줄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가 바로 수영장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타협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경험과 신선한 문화 충격들이 분명 이들의 기억과 잠재 속에 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즐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인 셈이다. 4년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길에서, 내가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결론을 내렸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놀랍게도 일년이 다르게 여행의 즐거움과 목적도 달라졌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생각에 발맞추어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인도 여행과, 마지막 인도 여행을 생각했을 때 느껴지는 그 차이는, 정말 천지차이이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만의 첫 번째 인도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첸나이로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나의 꾸준한 블로그 기록은 생각지도 않게 많은 사람들을 고무시켰고, 5년여가 지난 지금 그곳 첸나이에서는, 인도 여행을 간다는 게 전혀 놀랍지 않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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