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소종, 노총수선 : 중국차
이번 추석에는 무슨 일인지 전도 부치지 않았고, 송 편도 빚지 않았다. 추석 전부터 한숨을 푹푹 쉬던 내 모습이 민망할 정도로 편한 명절을 보낸 후, 추석 당일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친정 식구들과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차를 우려마시는 여유를 누렸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이다.
친정 엄마가 가져오신 제주산 용과에, 와인이랑 먹으려고 사두었던 하몽을 꺼내서, 정산소종을 우렸다. 은근한 훈연향이 매력인 중국 홍차 정산소종은 우리집 아이들도 참으로 좋아하는 차 중의 하나이고, 하몽과 찰떡 궁합이라 차생활 12년차인 우리 딸내미가 종종 찾는 차이기도 하다.
용과와 하몽, 정산소종의 합은 아주 좋았다. 정산소종은 축축하게 비가 오는 날과 참 잘 어울리는데, 추석 당일처럼 맑은 하늘에도 좋았다.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아 마시는데, 뭔들 맛이 없으랴. 여섯 입이 쉴새없이 움직인다. 수다떨랴, 차 마시랴, 티푸드 먹으랴.
제법 귀한 노총수선을 꺼내 우렸더니 다들 감탄한다. 비싼 차가 다 좋은 차는 아니지만, 좋은 차는 다 비싸다.(;;) 아껴두었던 차들은, 좋은 사람들과 나눈다. 명절날 모인 가족들처럼 말이다.
익숙한 듯 차를 비워내는 조그만 조카들이 신기한 내 동생은, 자기도 요즘 중국차가 좋다며 제법 차를 즐긴다. 늘 아이들과, 아니면 학생들과 나누던 차를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마시니 감회가 새롭다. 추석이라는 명절 효과도 있는지 환한 보름달처럼 마음이 둥실 떠오른다.
다음 명절에는, 시댁에 갈 때도 좋은 차를 싸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나누는 찻자리 덕분에 마음이 유연해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