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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여행 - 마하발리푸람

인도와 차도가 제대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거리에 소와 개, 오토바이와 릭샤가 난무하는 첸나이는 사실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공간이나 가볍게 산책할 거리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집 근처에 바닷가가 있어 한 번씩 산책을 가곤 하지만, 산책로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종종 첸나이 근교의 마하발리뿌람을 가곤 했다. 마하발리뿌람은 우리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곳인데, 팔라바 왕조 시절의 힌두교 유적지로 알려져 있는데다 198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되면서 남쪽을 들르는 배낭여행객들은 꼭 한 번씩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도착하자마자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르주나의 고행(혹은 바기라따의 고행) 부조물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의 주인공 아르주나가 고행하는 모습을 새겨놓은 유명한 기념물이다. 시바의 명령으로 갠지스강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과정과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주나의 고행을 묘사한 것이다. 정교한 조각들을 따라 이야기를 되짚어보는 즐거움과, 조각들 사이에서 아르주나의 고행을 따라하는 고양이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하발리뿌람 기념군은 꽤 넓다. 낮은 산을 등반한다는 기분으로, 혹은 숲길을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걸어다니기 좋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이곳에 오면 물 만난 물고기마냥 뛰어다니기 바쁘지만 말이다. 동굴과 암석으로 만들어진 템플이 그저 신기해서 그런지, 알아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요구하기도 하고, 몸을 숨기거나 끼워 맞추면서 즐거워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든 부분도 물론 있지만, 둘이서 단짝이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면 하나가 아닌 둘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가을 하곤 한다. 세상에 모든 일에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듯이 말이다.


목동으로 변한 크리슈나가 젖을 짜는 모습이라든지, 가네샤 라타 사원이라든지, 비쉬누를 모신 바라하 동굴 사원, 가네샤가 인간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조각된 모습 등 서로 같은 듯 너무나 다른 벽화 조각이 가득하다. 바위산 꼭대기에도 멋진 건축물들이 있다. 계단과 동굴, 바위산 속에서 미로찾기를 하는 듯이 신난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닌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원이나 조각은, 큰 바위를 통째로 조각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인도 여행을 다니면서 늘 그렇듯, 그 정교함이 새삼 놀랍다. 나오는 길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흔들바위 같은, 곧 굴러갈 듯 아찔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꼼짝하지 않는 크리슈나의 버터볼 바위도 구경하고, 마하발리뿌람에서 유명한 돌 조각 기념품도 구경한다. 여행지마다 하나씩 모으게 되는 코끼리 조각은 서로 다른 모습과 다른 색깔의 암석이 언제나 매력적이다.


마하발리뿌람의 마지막 여정은 물놀이이다.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쇼어 템플은 쓰나미로 다 소실되고 단 하나만 남아 있다고 한다.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물놀이를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과 우리 아이들은, 옷차림에 상관없이 물에 몸을 담그며 함박웃음을 내보인다. 아이들이 찰방찰방 물놀이를 하는 동안 차가운 돌을 깎아 만든 쇼어 템플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그 옛날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운 도시 마하발리뿌람.


마하발리뿌람 근처에는 인터컨티넨탈 호텔이나 쉐라톤 호텔 같은 세계적인 호텔과 함께 아이디얼 비치와 같은 인도 호텔이지만 바닷가에 자리를 잡은 깔끔하고 괜찮은 숙소들이 많다. 각 호텔별로 프라이빗 비치가 있어 호텔 관리 하에 있다 보니 제법 깨끗하고 쾌적한 해변을 즐길 수 있다. 마하발리뿌람도 구경하고 바람도 쐴 겸 하루 정도 기분전환으로 다녀오기 좋다.


지금도 우리집 장식장 위에는 마하발리뿌람에서 데려온 코끼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인도 생활을 길게 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만, 그 작은 돌 안에 담긴 추억들이 참 소중하다. 작은 코끼리 조각 하나에, 이렇게 마음 따스해지는 시간들이 한 가득 피어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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