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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여행 - 케랄라 테카디

때론 특별한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있다. 특히 케랄라 여행이라면, 여러 번 가본데다가 거리도 멀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긴 여름방학 중에 짧은 일탈을 다녀왔다. 케랄라 테카디.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한, 수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분꽃이 우리를 반긴다. 옛 추억을 소환하는 반가운 꽃의 등장에 혼자 신이 났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동안 꼼질대던 두 아이가 분꽃의 까만 씨를 따서 양손 가득 들고 왔다. 첸나이에 들고 가서 심자며.


짐을 풀고 발코니에 앉자마자 시원한 비가 쏟아진다. 나뭇잎,과 흙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여간 경쾌한 게 아니다. 아이들과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한 잔 우려 마시며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천천히 하루를 보낸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호텔 내부를 구경해본다. 힌두 신들이 다 그려져 있던 커다란 벽화 속에서 아이들과 각자 좋아하는 신의 모습을 찾아낸다. 알암브라 궁전의 물시계처럼, 정각이 되면 코끼리가 물을 뿜어내는 물시계도 구경하고 인도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각종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주렁주렁 매달린 커다란 잭프룻도 구경한다. 잭프룻이라는 과일은 성인 머리의 두세 배나 될 정도로  커서, 잭프룻을 잘라 먹을 때는 '잭프룻 한 마리를 잡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숙소 안에 다양한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 아이들과 산책하며 구경하기 좋았다. 케랄라 지역의 숙소는 자연 환경이 잘 어우러진 곳들이 많아서, 자연 속 힐링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케랄라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부분 중의 하나는 음식이다. 재료도 신선하고 마살라도 첸나이보다 덜 강한데다 요리에 코코넛 오일을 많이 사용해서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 얼마나 맛있으면, 여기에 평생 살고 싶다는 둘째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지프 사파리를 떠났다. 지프차를 타고 테카디의 차밭과 뷰포인트를 도는 일정인데 운이 좋으면 자연 속의 호랑이와 코끼리 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9년을 가이드로 일했다는 무루간은 호랑이를 눈앞에서 딱 두 번 봤다고 했다. 호랑이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기대한 아이들이 지프차에 몸을 싣는다. 한창 찻잎을 채엽 중인 스리랑카 타밀족들에게 손을 흔드니, 환한 웃음으로 답한다. 아이들도 나도, 끝없이 펼쳐지는 녹음을 감상하며, 대자연의 경관에 넋을 잃는다.


테카디에 있는 페리야르 국립 공원은 호랑이 6마리, 코끼리 800마리가 살고 있는 야생동물 보호 구역이다. 사파리 중에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망원경으로 코끼리와 사심, 버팔로 등의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동물원이 아닌, 실제 숲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이라니, 아이들은 동물들을 발견할 때마다 잔뜩 흥분했다. 더 멋진 경관을 관찰하기 위해 작은 산도 등반하고, 산속에 피어 있는 레몬그라스를 문질러 그 향도 맡아본다. 이렇게 멋진 산악 지대가 있었다니, 감탄의 연속이다. 문나르에서도, 닐기리에서도, 이렇게 멋진 경관은 볼 수 없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새로운 케랄라가 아닐 수 없다.


원하던 호랑이와 코끼리를 눈앞에서 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싱그럽고 아름답고 초록초록했던 자연의 향기를 만끽했던 그 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도 지프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신나게 웃고 떠들었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는지, 이곳의 이야기를 종종 한다. 지금도 테카디 여행을 추억하면, '아, 인도 다시 가고 싶다'는 아이들.


가끔 이렇게, 아이들과 오롯이 우리끼리 떠나는 여행이 나는 참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앞으로도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기 전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충만하게 보내는 시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회화라는 것의 시작은 결국 가정이니까. 가정에서 탄탄한 관계를 맺은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사회화 교육에 애쓰기보다는, 엄마와 아빠가 한 번 더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사회화의 시작이 아닐런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테카디 여행에서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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