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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여행 - 코임바토르, 코친, 마라리꿀람

코임바토르

인도를 떠날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왠지 모르게 조급해진다.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이 남았는데. 그래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아직 인도 땅에 있으니까. 꼭 만나보고 싶었던 시바 신상이 있는 첸나이에서 한 시간 거리의 코임바토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행을 가는 김에, 좋아하는 케랄라도 한 번 더 들렀다 와야겠다며, 코친과 마라리꿀람을 여정에 넣고 조금 긴 여행을 떠났다.


32도의 쾌적하고 선선한(?) 가을 10월이다. 한국의 가을처럼, 이곳의 가을 하늘도 높고 푸르다. 한국으로의 발령을 받고 나니 매일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첸나이에서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 하늘과 달리 내 마음은 잿빛으로 복잡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친해진 옆집 관리인 아저씨가 꽃을 한아름 따다 주신다. 안전한 여행을 하고 돌아오라며. 꽃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 뒤로 매일 정원에서 꽃을 따다 주시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정들었던 이들과 이곳에서의 일상들이 벌써부터 자꾸 눈에 밟힌다.


코임바토르에 가고 싶었던 건 이샤 재단에서 세운 멋진 시바상이 있는 디야나링가에 가기 위해서이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추앙 받는 신 중의 하나인 파괴의 신 시바.신의 상반신을 검은색 돌로 거대하게 만들어두었는데, 파괴의 신이라는 이름과 달리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고 있는 그 모습에 그 자리에서 반해 버렸다. 늠름하고 위엄 있는 시바 신의 모습, 그 크기에 아이들도 연신 감탄을 내뱄는다. 


시바 신의 거대한 귓속에 자리를 잡은 벌집을 발견한 아이들은 또 한 번 호들갑이다. 정말 귓속 그늘진 곳에 커다란 벌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시바 신의 보호 안에 자리를 잡은 축복 받은 벌집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관광지처럼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지만, 이곳에는 잘 알려진 이샤 재단의 명상 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이 상이 세워졌을 당시에는 무척이나 고요하고 적막한 곳이었고, 적막을 방해할 수 있는 여자들의 하이힐이나 손목시계까지도 풀어놓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관광화가 되어버려 기도를 올리고 명상을 하는 일조차 관광화가 되어버렸다고 하는 말에 안타깝기도 했지만, 자연스레 신과 어우러지는 그 모습이 인도인들 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코친

코친은 벌써 세 번째로 하는 여행이었다. 마지막 여행인 만큼, 코친에서 유명하다는 타지 말라바 호텔에 머물러 보기로 했다. 케랄라 전통 사리를 차려 입은 직원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고, 호텔 안에서 케랄라의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케랄라를 대표하는 짜이와 바나나 튀김을 즐기고 석양이 아름다울 즈음 배타기 투어로 코친을 한 바퀴 돌며 코친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노을이 지는 멋진 하늘을 배경으로 코친의 명물인 차이니즈 피싱 넷도 감상하고 전통 춤인 까따깔리를 감상하는 시간으로 마무리. 


확실히 아이들이 조금 더 크니, 여행이 많이 수월해졌다. 다음 날에는 그냥 스쳐 지나쳤던 코친 시내에서 지나간 코친의 역사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영국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그런지, 예술적이나 문화적인 부분에서 유럽의 발자취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차를 한 잔 마시러 들어간 티숍의 벽에는, 립톤의 광고지들이며 커티삭과 같은 티클리퍼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마라리꿀람

마라리꿀람은 케랄라하고도 알레피 지구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바다가 맞닿아 있고,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 아이들과 깨끗한 인도 바다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 다녀왔다. 인도 서쪽에 있는 바르깔라나 콜람, 코발람과 같은 케랄라의 해변은 관광객들의 명소이다. 마라리꿀람은 그에 비해 규모가 작고 조용한 해변이라, 마치 무인도에 온 듯한 기분으로 평화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마지막 여행이라는 것은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한'을 풀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도 여행에서 크게 누릴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호텔이나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라 가능한 일인 듯하다. 그래서 이번 마라리꿀람에서는 풀비치가 딸린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아이들은 거실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수영장에서 이른 아침에도, 깜깜한 늦은 밤까지도 물놀이를 즐겼다.


마라리꿀람의 리조트는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바다가 직접 연결되는, 그야말로 친환경적인고 원시적인 곳이었다. 잔잔한 바다와 하얀 모래가 가득한 해변은 물놀이를 하기에 그만이었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 시시각각 변해가는 해변을 바라보는 시간도 고즈넉하니 좋았다. 풀과 나무가 가득하니 햇살은 뜨거워도 공기는 시원했고, 맑은 공기는 머릿속까지 맑게 채워주었다. 하루 종일 수영복 차림으로 다니던 아이들은 더 이상 새카매질 수 없을 때까지 까맣게 탔지만, 마냥 행복해했다. (다행히 한국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의 까만 얼굴은 금세 하얗게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이런 울창한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한국의 시간은 인도의 시간처럼 이렇게 더디게 흘러갈 수 있을까.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가고, 모든 게 급하기만 한 대한민국 도시의 모습이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져, 조급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문득 문득 고개를 들곤 했다. 4년 만에 만나는 한국의 모습은 어떨지, 처음으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다가, 파도소리에 쓸려내려 갔다가를 반복했다.


아마도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첸나이로 돌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그곳이, 인도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상상은 했지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인도에서의 마지막을 차분히 준비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열흘 전에, 나는 아이들과 그곳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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