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한 무력한 나를 용서하기
내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웹툰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 일 것이다. 비슷한 영역을 공부하고 일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어서일까 너무나도 깊게 공감되는 내용이 항상 넘쳐나지만 그 중에서도 얼마전에 가장 크게 위안을 얻었던 내용은 “배신당한 나를 용서하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라는 것은 남에게 내가 베풀어야 할 아량과 호의라고만 믿어서 였을까.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더군다나 상처받은 나를 용서한다라.. 나에게 상처 준 악당을 어떻게 용서해야하는지만 부족한 마음의 여유를 탈탈털어 쥐어짜내봤지 그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한 무력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몰랐었다.
그런데 그 웹툰 덕택에 돌아보게되니 비로소 보였다. 어리고 외롭고 무지했던 지난 날의 나 자신을 악마화하고 받아주지 못하고 있던 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오늘의 나 였다는 것을.
어리고 약한 나를 배신한 것은 성장하고 강해진 나였다. 그 상황에서 그 나이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난 그 때 그 나의 약함을 받아주지 못했다. 항상 나 자신에게 너그럽다고 믿었었는데 실상은 가장 연약했던 나에게 가장 냉혹했던 사람이 나였다. 나의 연약함을 용서한다는 것을 생각해내기까지. 그리고 그 연약함에 냉혹했던 나 자신을 또 용서하기까지. 정말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아마 정말로 충분히 다 용서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상처받은 나 자신에게 그냥 강해져야 한다고, 잊어야한다고, 회복해야한다고,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고 계속 소금물을 끼얹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재투성이의 아이를 박박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꼬질꼬질한 그대로 사탕을 꼭 쥐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러운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지 못한 것일 뿐이다. 정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용서라는 것은 그렇게 락스를 뿌려서 깨끗이 소독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한 그대로를 꼭 쓰다듬어주는 것임을 이제야 생각해낼 수 있었다.
트라우마와 같이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런 용서가 필요한 것 같다. 그 안에서 상처받아 만신창이가 된 나의 볼품없음을 용서한다. 가장 약해빠진 나의 편에 서서 그만큼 버텨낸 것으로 충분히 대단하다고 지지해 주는 것. 잊혀진 가치를 되찾기 위해, 이제는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이고 나 스스로의 그 생존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그 과정이 용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