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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Mar 24. 2023

망했어도 결혼사진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크고 무거운 앨범들이 빼곡히 붙박이장 선반 아랫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손가락 하나도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손을 들어 앨범 하나를 꺼내려하자 전체가 들썩 거렸다. 다른 한 손으로 옆의 앨범을 붙잡고 힘을 주어 당겼다. 그러자 다른 한쪽의 작은 앨범까지 딸려 나와버렸다. ‘아이고, 이놈의 앨범 빨리 정리해서 버릴 건 버려야겠다’ 크고 묵직한 앨범이 타깃이었는데 딸려 나온 것을 확인해 보니 결혼식 앨범이었다. 본식 전에 찍은 야외 촬영 사진도 들어 있는 앨범도 함께였다. 표지를 잡고 넘기니 쩍 소리가 들렸다.           



© rirri01, 출처 Unsplash



투명 비닐 속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사진들. 정리해야겠다는 좀 전의 마음은 잊은 채 사진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야외 촬영으로 찍은 사진들은 화장발, 조명발 그리고 보정을 거친 작품이라 그런지 아주 만족스러운 사진으로 탄생됐다. 보면 볼수록 어색했지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생에 다시 이런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모든 사진들이 다 맘에 들어 앨범에 들어간 사진 외에 전체 사진을 비용을 주고 cd로 담아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나하나 보고 있는데 점점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느껴졌다. ‘아니,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어차피 벌어진 일, 사진은 평생 가는데 꼬라지가 저게 뭐야~’ 궁시렁 거린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에 흠칫했다.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왜 저렇게 못나게 찍었을까. 꼭 저래야만 했을까. 꼭 티를 내야만 했을까.       


    

오전 예식이라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헤어도 메이크업도 골라놓은 웨딩드레스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한 동네에 오래 사셨고 모임이 많았던 시부모님. 그 지역에서 진행된 결혼식이라 손님들이 많이 오셨다. 그에 반해 먹고 사느라 외부 활동이 적었던 부모님. 하객이 걱정됐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친척분들, 회사 식구들이 많이 오셨기에 다행이었다. 손님들을 볼 때마다 울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순간들이 무색할 만큼 씩씩했고, 독립한다는 생각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한동안 받았던 피부관리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화장도 만족스러웠다. 두껍기는 했지만 커버된 잡티에 어깨뽕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결혼식의 꽃은 신부지.’ 스스로 흡족해하며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식을 기다렸다.           



전문 사진 기사님, 영상 촬영 기사님 외에 출사를 다닐 만큼 사진 찍기에 진심인 친구에게 따로 부탁까지 했었다. 영상 촬영 기사님이 오시다 접촉사고가 나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사진 기사님께 전해 들었다. ‘하필 지금?, 그래도 크게 다치신 건 아니라니 다행이네’ 불안했지만 ‘본식 때까진 오시겠지’ 스스로를 다독였다. 불안함은 현실이 되어 제일 행복하고 기뻐야 할 순간에 나의 몸과 정신을 지배했다. ‘왔나?, 왜 안 오는 거야?, 설마 많이 다친 건가?, 이 사람들이 진짜, 사진만 많으면 뭐 해 결혼식 영상이 있어야지, 짜증나, 이게 뭐야...’ 결혼식 내내 이어폰으로 듣는 것처럼 마음의 소리만 들려왔다. 그 마음의 소리는 행복한 신부의 표정을 앗아갔다.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신혼여행을 출발할 때까지도 끝내 나타나지 않으셨다. 긴장으로 굳었었나 싶었던 얼굴은 사진 속 시간의 순으로 풀렸어야 했다. ‘이 결혼 결사반대야’ 마지막 반전이 숨어있는 막장 드라마 속 풍경처럼 점점 더 절정에 이른 표정이었다. 상황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친정 식구들이 인상 좀 피라고,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었건만 귀머거리가 됐었다.           



© frelodesign, 출처 Unsplash



시간이 흘러 예쁘게 포장된 앨범이 도착했다. 정성스럽게 담아준 결혼사진이었다. 앨범을 펼쳐 보는 순간, ‘오 마이 갓’ 누군지 모른 척하고 싶었다. 결혼식의 꽃은 신부라는데 꽃은커녕 오리주둥이 입술에 이마에는 잔뜩 힘을 주어 석삼(三)이 보이는 누가 보면 오해할 만한 표정이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세월이 흘러보니 그 말이 맞다. 신혼 초 친구들이 집에 왔을 때 결혼사진을 함께 보며 신부 표정이 이게 뭐냐며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쩌다 결혼사진을 보게 될 때면 저절로 입술이 삐죽거렸다. 분명 행복했는데 행복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흔한 말로 똥 씹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누군가와 사진을 볼 때면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생겼다. 범상치 않은 표정에서 보는 이마다 왜 이러냐고 물어왔고 지나간 일이어서 그런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하나의 재미요소가 되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야외 촬영 때처럼 웃는 얼굴에 예쁜 모습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상한 표정이건 웃는 얼굴, 슬픈 표정이건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모습 그대로 찍힌다. 흔들리고 이상하게 찍힌 사진이라도 사람이 찍힌 사진은 찢어서 버리기가 쉽지 않다. 순간 멈칫하게 된다. 그나마 디지털 세상, 핸드폰으로 찍고 바로 삭제해 버리고 정말 맘에 드는 것들만 남기게 되어 다행일지 모른다.           


© lee_hisu, 출처 Unsplash



내 생애 단 하나뿐인 결혼사진들. 기쁨과 짜증, 행복이 오묘하게 공존되어 있는 사진. 아마 결혼식 사진이 아니었다면 인화되지도 못한 채 삭제 버튼 하나로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묵직한 앨범으로 남겨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똥 씹은 표정이라도 인생 통틀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사진 역시 중요한 증거물이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아빠 이렇게 결혼했어’라며 사진을 보며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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