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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Mar 28. 2023

손때가 묻고 싶었던 물건

결혼 날짜를 잡고 혼수를 준비하며 가끔은 남들처럼 엄마와 함께 다니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가장이나 다름없는 엄마는 주말도 없이 일을 하셨기에 신랑이 될 그와 함께 다니며 혼수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예물은 서로의 부모님들이 해주는 혼수품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우리끼리 결정지을 수 없었다. 그와 나는 심플하고 간단하게 반지 하나씩을 주고받길 원했는데 시부모님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셨던 모양이다. 시부모님의 오래된 지인분이 운영하는 금은방이 있어 그곳에서 예물을 맞추게 됐다.           

시어른들도 어려운 마당에 지인분들이라니. 그것도 오래된 절친 부부라니 긴장감에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근처고 아는 집이라 그런지 시어머니도 동행하게 됐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과 함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장가가는 거야 훈아~ 이 사람이 훈이 색시될 사람이란 말이지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90도로 인사를 드렸다. 여기서 잘해야 시부모님과 그에게 점수를 딸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서로에 대한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예물을 보여주셨다.           



© phillekes, 출처 Unsplash




어른들이 골라서 내민 반지들은 투박했거나 화려했거나 밋밋했다. 목걸이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도 귀금속이나 액세서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예물인데 스스로 맘에 드는 것을 고르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이 있었건만 신이 나서 보여주시는 분들께 무어라 말할 용기가 없었다. ‘어차피 예물은 평소에 잘 안 하고 다닌다자나, 어련히 알아서 좋은 것들로 골라주실까.’ 그렇게 나의 의중과 관계없이 예물이 결정되었고 시어른들이 보관하고 계시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갈색의 매끈한 예물함 뚜껑을 열면 반짝거리는 예물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하고 다니기엔 너무 고가이거나 화려했다. 결혼반지 하나 끼고 심플한 귀걸이를 주로 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마저도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액세서리 보관함으로 오랫동안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매일 하고 다녔던 것들도 이러할진대 예물은 얼마나 선택받지 못한 세월일까. 더군다나 신혼 초에는 신혼집은 유난히 도둑이 잘 든다는 이야기에 한동안 시댁에 보관했었다. 가끔씩 행사를 치르거나 가야 할 일이 생길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 예물함을 열어 유난히 반짝이는 목걸이와 귀걸이를 꺼내 착용했다.           



아무리 예물은 평소에 잘하고 다니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다. 왜 나는 이 아이들을 더 많이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도 비싸고 아깝다는 이유로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도 아니었다. 당당히 받은 내 물건인데 내 거 같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고가의 물건들이다. 나이가 더 들어보니 아무리 화려하고 귀한 물건이라도 쓰여야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귀하니 귀한 취급을 해주는 게 아니라 그만큼 더 많이 사용하고 정성을 들여 관리해 주면 되는 것이다. 손때가 묻은 물건일수록 더 정이 가고 사람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 역시 귀한 사람이다. 단지 그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알아주지 못했다. 그랬기에 화려하고 비싼 물건들이 부담스러웠던 거다. 꼭 비싸고 좋은 액세서리를 하고 다녀야 귀한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예물이네 하는 느낌이 드는 액세서리가 신경 쓰였던 거다. 남을 너무 의식하고 살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에게 있는 물건인데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애당초 예물을 맞출 때 내 목소리를 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없으면 이 물건의 쓰임도 사라지고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르는데 너무 아끼고만 산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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