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등급표의 숨은 진실

by 보나스토리


소고기 등급제의 실체

정육점이나 마트에서 소고기를 구매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이 바로 등급표입니다. 1++, 1+, 1등급으로 표시된 숫자와 기호들이 마치 고기 맛의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는 소비자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들이 숨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고기 등급 시스템은 도축 직후 소고기의 단면을 평가하여 결정됩니다. 육질등급은 고기의 질을 근내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에 따라 1++, 1+, 1, 2, 3등급으로 판정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근내지방도, 즉 마블링이 등급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a beef table

마블링 중심의 등급제가 갖는 한계

소고기는 육량(고기의 양)과 육질(고기의 질)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육질 등급의 기준이 등심 부위 절개면의 지방분포 정도, 즉 '마블링'이 얼마나 끼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등급이 높을수록 고기 안에 지방이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고기의 맛은 단순히 지방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지방의 질, 고기의 조직감, 조리 방법, 개인의 취향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1++등급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최고의 맛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블링이 풍부할 경우 고소한 풍미와 육즙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반면 고기 본연의 식감이나 결이 덜 느껴질 수 있으며, 조리 시 느끼함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스튜나 장조림과 같이 장시간 끓이는 요리에서는 마블링보다 근육의 조직감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해외 등급제와의 비교 분석

국제적으로 소고기 등급 기준을 살펴보면 한국의 마블링 중심 체계와는 다른 접근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소고기는 미국 농무부(USDA)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한다. 농무부에서 부여하는 소고기 등급은 8개로 나뉘어 있다. 프라임(Prime)이 최상 등급이고 캐너(Canner)가 최하 등급이다. 근내지방률(마블링)과 사육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일본의 와규 등급 시스템 역시 마블링 외에도 지방의 질, 색상, 결의 균등성, 고기의 윤기와 촉감까지 포함하여 평가합니다. 이러한 다각도의 평가 방식은 한국의 마블링 중심 등급제가 고기의 품질을 평가하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제한적임을 보여줍니다.

meat-7696814_1280.jpg beemeat-7696814_1280

요리 목적에 따른 적절한 등급 선택

소고기의 활용 목적에 따라 적합한 등급이 다를 수 있습니다. 스테이크와 같은 구이 요리에서는 마블링이 풍부한 1+ 이상의 등급이 육즙과 풍미를 극대화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반면 갈비탕이나 설렁탕과 같은 국물 요리에서는 1등급 정도면 충분하며, 오히려 과도한 지방은 장시간 끓이는 과정에서 느끼한 맛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불고기나 장조림의 경우에는 양념과 조리법이 맛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이므로 1등급 이하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고기 선택을 위한 가이드라인

좋은 고기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등급표 외에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요소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기의 색상이 선명한 선홍빛을 띠는지, 지방이 순백색으로 윤기가 도는지, 고기결이 일정하고 촘촘한지 등을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숙성 여부, 원산지, 사육 방식 등도 고기의 품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입니다. 동일한 등급이라도 이러한 조건들에 따라 맛과 품질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과 건강 상태를 고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과도한 지방보다는 적절한 마블링과 담백한 육향의 균형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지방 함량이 적당한 고기를 더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beef-and-wine-pairing.jpg Beef and wine pairing

소고기 등급과 와인 페어링의 연관성

소고기는 등급이 높을수록 근내지방도(마블링)가 풍부해집니다. 이 마블링이 많은 고기는 지방이 녹으며 진한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을 제공합니다. 이런 고기에는 구조감 있고 탄닌이 풍부한 와인이 잘 어울립니다. 반대로, 저등급(마블링이 적은) 소고기에는 가벼운 바디와 산도가 있는 와인이 더 적합합니다.

와인과 소고기 페어링의 핵심은 지방과 탄닌의 균형입니다. 고기의 지방은 와인의 탄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와인의 산도와 풍미는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줍니다


등급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사육기간 단축으로 국내산 소고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1+와 1++ 등급의 근내지방도 기준을 완화하고, 현행 마블링 위주의 등급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최저등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정책 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현행 등급제의 한계를 정부 차원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고기 등급은 하나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되, 절대적인 맛의 기준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등급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최고의 맛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인 고기 선택의 중요성

소고기를 선택하는 것은 단순히 높은 등급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요리 목적과 취향에 맞는 고기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등급표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최종적인 판단은 소비자 개인이 내려야 합니다.

마블링을 우선순위에 두던 과거와 달리 소고기의 육색, 등지방두께 등 고려해 등급 결정됨이라는 변화도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은 등급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고기를 선택하고 즐길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등급표를 맹신하기보다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글은 조동천 저『소고기의 미학, 맛과 이야기를 담다』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keyword
이전 07화‘소에게 맥주를 먹이고 마사지한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