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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숙성 vs 병 숙성: 어떻게 다른가

오크통과 병, 와인 숙성의 두 얼굴

by 보나스토리

와인 라벨을 보다 보면 "오크통에서 12개월 숙성", "병 숙성 최소 5년" 같은 문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와인 마니아라면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오크 숙성과 병 숙성, 둘 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건데 대체 뭐가 다를까? 그리고 이 숙성 과정이 와인 가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늘은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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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이란 무엇인가

와인에서 '숙성'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숙성은 와인의 화학적 성분들이 서로 반응하고 변화하면서 더 복합적이고 조화로운 맛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마치 김치가 발효되면서 깊은 맛을 얻는 것처럼, 와인도 시간을 거치며 완전히 다른 차원의 풍미를 갖추게 된다.

숙성의 핵심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거친 요소들이 부드러워진다. 타닌의 떫은맛이나 날카로운 산도가 둥글게 깎인다. 둘째, 단순했던 향이 복합적으로 변한다. 신선한 과일 향에서 말린 과일, 가죽, 향신료 같은 다층적인 향으로 발전한다. 셋째, 모든 요소가 통합된다. 처음엔 따로 노는 것 같던 맛, 향, 질감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균형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모든 와인이 숙성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전체 와인의 약 90%는 출시 후 1년~2년 내에 마시도록 만들어지며, 장기 숙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와인은 극히 일부다. 타닌, 산도, 당도, 알코올 도수가 충분한 와인만이 오랜 숙성을 견딜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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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숙성: 와인에 복잡미를 더하는 시간

오크 숙성은 발효가 끝난 와인을 오크통에 담아 일정 기간 보관하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3~9개월, 레드 와인은 12~24개월 정도 진행되며, 프리미엄 와인의 경우 더 오래 숙성하기도 한다.

오크통 숙성의 가장 큰 특징은 와인에 새로운 풍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오크 나무는 바닐라, 토스트, 스모키, 코코넛, 정향 같은 향을 와인에 전달한다. 특히 오크통을 만들 때 내부를 불로 그을리는 '토스팅' 과정을 거치는데, 이 정도에 따라 캐러멜, 커피, 초콜릿 같은 풍미가 달라진다. 라이트 토스트는 섬세한 바닐라와 캐러멜 향을, 미디엄 토스트는 균형 잡힌 풍미를, 헤비 토스트는 강렬한 스모키와 초콜릿 향을 부여한다.

하지만 오크 숙성의 역할은 단순히 향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크통의 나무 벽을 통해 미세한 산소가 와인 안으로 침투하는데, 이를 '미세 산화'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와인의 떫은맛을 내는 타닌이 부드러워지고, 색깔은 더욱 안정되며, 과일 향은 점차 복합적인 2차 향으로 발전한다. 특히 레드 와인의 경우 거친 타닌이 실크처럼 부드러워지는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오크의 종류와 비용: 선택이 곧 투자

오크통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와인 생산자가 어떤 오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와인의 맛은 물론, 생산 비용도 크게 달라진다.

프랑스산 오크는 와인 업계의 로열티다. 주로 알리에, 보주, 트롱세, 네베르 같은 유명 숲에서 나온 참나무를 사용하는데, 결이 곱고 치밀해 섬세하고 우아한 향을 낸다. 스파이시하면서도 은은한 바닐라, 토스트 향이 특징이다. 프랑스산 오크통 하나의 가격은 평균 850~1,500달러(약 120~210만 원)이며, 최고급 숲에서 나온 특별한 통은 3,000달러(약 420만 원)를 넘기기도 한다.

미국산 오크는 주로 미주리, 오하이오, 켄터키에서 생산된다. 프랑스산보다 결이 거칠고 공극이 커서 더 빠르고 강렬하게 풍미를 전달한다. 코코넛, 딜, 바닐라 향이 두드러지며, 달콤하고 크리미한 느낌을 준다. 가격은 프랑스산의 절반 이하 수준인 360~500달러(약 50~70만 원)로 비교적 저렴하다.

헝가리산 오크는 최근 주목받는 선택지다. 프랑스산과 같은 참나무 종이지만 가격은 560~700달러(약 80~100만 원)로 더 합리적이다. 프랑스산과 미국산의 중간 정도 특성을 가지며, 풀바디 와인에 잘 어울리는 견과류 풍미를 제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크통의 '나이'다. 새 오크통은 가장 강렬한 풍미를 주지만, 3회~4회 사용하면 향은 약해지고 미세 산화 기능만 남게 된다. 그래서 많은 와이너리는 새 오크통과 중고 오크통을 섞어 사용하며, 이 비율이 와인의 스타일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새 오크통 50%"라는 표현은 와인의 절반만 새 통에서 숙성했다는 뜻이다.

오크통의 크기도 중요하다. 작은 배럴(225리터 바리크)은 와인과 오크의 접촉 면적이 넓어 풍미가 강하지만, 큰 통(500리터~1,000리터)은 더 온화한 영향을 준다. 부르고뉴는 작은 바리크를, 이탈리아 바롤로는 큰 보티를 선호하는 식으로 지역마다 철학이 다르다.


병 숙성: 와인이 스스로 진화하는 시간

병 숙성은 오크통에서 나온 와인을 병에 담고 코르크로 막은 뒤, 시원하고 어두운 곳에서 보관하는 과정이다. 이 기간은 와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몇 개월만 거쳐도 충분한 와인이 있는가 하면, 10년, 20년, 심지어 수십 년을 기다려야 제맛이 나는 와인도 있다.

병 숙성의 핵심은 환원 환경이다. 오크통과 달리 병 안은 거의 산소가 없는 밀폐된 공간이다. 이 환경에서 와인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던 성분들이 서로 반응하며 변화한다. 코르크를 통한 미세한 산소 유입만이 이 천천한 진화를 돕는다.

병 숙성 기간 동안 와인의 1차 과일 향(프라이머리 아로마)은 점점 복합적인 3차 향(아로마 또는 부케)으로 발전한다. 젊은 레드 와인의 신선한 블랙베리 향은 시간이 지나며 말린 과일, 가죽, 담배, 삼나무, 버섯, 트러플 같은 오묘한 향으로 바뀐다. 화이트 와인 역시 생생한 감귤 향에서 꿀, 견과류, 구운 사과, 페트롤(특히 오래된 리슬링에서) 같은 독특한 향으로 진화한다.

색깔도 달라진다. 레드 와인은 불투명한 루비색에서 벽돌색이나 오렌지 빛을 띠게 되고, 병을 기울였을 때 가장자리(림)에서 갈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이트 와인은 연한 레몬색에서 진한 금색, 심지어 호박색으로 깊어진다. 타닌 분자들은 서로 결합하며 무거워져 병 바닥에 침전물로 가라앉는데, 이는 와인이 잘 숙성되고 있다는 신호다.


두 숙성의 결정적 차이

오크 숙성과 병 숙성의 가장 큰 차이는 '첨가'와 '진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오크 숙성은 와인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는 과정이다. 오크 나무의 향, 타닌, 구조감을 외부에서 받아들인다. 반면 병 숙성은 와인이 이미 가진 것들을 재배열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또 다른 차이는 산소의 역할이다. 오크 숙성은 통제된 산화 과정이고, 병 숙성은 환원 과정이다. 오크통은 숨을 쉬는 용기지만, 병은 거의 밀폐된 공간이다. 시간의 측면에서도 다르다. 오크 숙성은 상대적으로 짧고 집중적이지만(3개월~24개월), 병 숙성은 길고 느리다(수년에서 수십 년).


숙성이 와인 가격에 미치는 영향

결론부터 말하면, 숙성은 와인 가격을 크게 올리는 요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오크통 비용이 가장 직접적이다. 프랑스산 새 오크통 하나에 120~210만 원이 드는데, 표준 225리터 통 하나에는 이론상 300병의 와인이 들어간다. 하지만 증발 손실(매년 2~5%씩 발생하는 '천사의 몫')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약 280~290병 정도가 나온다. 병당 오크통 비용은 4,000~7,000원 정도가 추가되는 셈이다. 새 오크통 비율이 높을수록, 프랑스산 고급 오크를 쓸수록 비용은 더 올라간다. 반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는 한 번 구입하면 수십 년 쓸 수 있어 병당 비용이 훨씬 낮다.

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와인을 오크통이나 병에서 숙성하는 동안, 그 와인은 팔리지 않은 채 와이너리에 묶여 있다. 2년 오크 숙성 후 5년 병 숙성을 한다면, 총 7년간 자금이 묶이는 셈이다. 이 기간의 이자 비용, 보관 비용(적정 온도 12도~15도와 습도 70% 유지), 증발 손실 등이 모두 가격에 반영된다.

인건비와 관리 비용도 있다. 오크통은 정기적으로 채우고(topping up), 청소하고, 관리해야 한다. 병 숙성 중인 와인도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해야 한다. 대형 저장고 유지비, 인력 비용이 모두 추가된다.

희소성 프리미엄도 빼놓을 수 없다. 10년, 20년 숙성한 와인은 그 자체로 희귀하다. 같은 빈티지의 와인이 해마다 줄어들고, 오래된 빈티지일수록 공급이 제한적이어서 가격이 급등한다. 수집가들의 수요까지 더해지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마고의 경우, 출시 시 병당 300~500유로 수준이지만 10년 후엔 500~800유로, 20년 후엔 1,000유로를 넘기기도 한다. 반면 오크 숙성 없이 스테인리스 탱크에서만 발효한 보졸레 누보는 병당 10유로~20유로에 불과하다.

결국 숙성이 긴 와인일수록, 고급 오크통을 사용할수록, 병 숙성 기간이 길수록 와인 가격은 올라간다. 하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우아하며, 깊이 있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마니아들은 그 가격을 기꺼이 지불한다.


이 두 방식은 적인가, 친구인가

많은 사람들이 오크 숙성과 병 숙성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프리미엄 와인은 두 가지를 모두 거친다. 오크 숙성으로 와인의 뼈대를 만들고, 병 숙성으로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인은 보통 18개월 정도 새 오크통에서 숙성한 뒤 병에 담기고, 최소 5년에서 10년은 병 숙성을 거쳐야 마실 만한 상태가 된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역시 12개월~16개월 오크 숙성 후, 병에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진가를 발휘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보졸레 누보처럼 아예 오크 숙성 없이 병에 담자마자 마시는 와인도 있고, 반대로 스페인 리오하의 그란 레세르바처럼 오크통에서만 2년, 병에서 3년, 총 5년 이상 숙성해야 출시할 수 있는 와인도 있다.


와인의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나

와인샵에서 5만 원대에 판매되는 와인의 가격은 세금, 물류비용, 유통 마진이 단계적으로 더해져 형성된다.

수입 단계에서는 먼저 관세(일반세율 15%, FTA 적용 시 인하 또는 면제)가 부과되고, 이를 포함한 금액에 주세 30%, 교육세(주세의 10%), 부가가치세 10%가 차례로 적용된다. 여기에 운송비, 보험료, 통관·물류·보관 비용 등이 추가되며, 이러한 세금과 부대비용은 최종 소비자가의 30~50%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수입사는 원가에 운영비와 리스크(환율 변동, 재고 부담, 마케팅 비용 등)를 고려해 20~30%의 마진을 붙여 와인샵에 공급한다. 와인샵은 임대료, 인건비, 재고 부담 등을 반영해 30% 내외, 경우에 따라서는 40% 안팎까지의 소매 마진을 더해 최종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다.


어떤 와인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까? 정답은 상황과 취향, 그리고 예산에 달려 있다.

오크 향이 강한 와인을 좋아한다면 '오크 에이지드' 또는 '배럴 에이지드'라고 표시된 와인을 찾아보자. 신세계 와인, 특히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나 호주 쉬라즈는 오크 향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복잡하고 미묘한 3차 향(부케)을 경험하고 싶다면 충분히 병 숙성을 거친 와인을 선택하자.

와인 라벨에 빈티지가 적혀 있다면, 현재 연도와 비교해 적어도 5년 이상 지난 빈티지를 골라보는 것도 좋다. 레드 와인의 가장자리에서 벽돌색이나 오렌지 빛이 보인다면, 화이트 와인이 금색이나 호박색을 띤다면 잘 숙성된 신호다.

중요한 건 숙성이 와인을 더 비싸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오크 숙성은 와인에게 무언가를 입혀주고, 병 숙성은 와인 스스로 성장하게 만든다. 이 두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와인 한 잔을 마실 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투자의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올 것이다.

다음번 와인을 고를 때, 라벨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와인이 어떤 여정을 거쳐 당신의 잔까지 왔는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와인은 훨씬 더 맛있어질 테니까.



참고 서적 �《알수록 더 재미있는 와인의 세계》조동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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