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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Grape 샤인머스켓, 미국 시장까지 넘보다

by 보나스토리

샤인머스켓, 한국에 뿌리내린 발자취와 세계로 향하는 변화의 흐름

지난 몇 년간 한국의 과일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과일이 있다. 씨 없이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청포도로, 은은한 망고향과 높은 당도로 '망고포도', '샤넬포도'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프리미엄 과일의 대명사가 된 샤인머스켓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만은 아니다. 급격한 인기와 확산,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샤인머스켓은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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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머스켓의 매력과 특징

샤인머스켓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 독특한 매력에 금방 빠져든다. 번들거리며 밝은 연둣빛을 띠는 얇은 껍질은 뱉을 필요가 없고, 씨가 없어 먹기 편하며, 적당히 큼직한 크기와 높은 당도가 특징이다. 당도는 평균 17~22 브릭스로 다른 포도보다 훨씬 높으며, 포도 껍질 특유의 억센 질감과 시큼함이 거의 없다.

가장 큰 매력은 아삭아삭한 식감과 은은하게 퍼지는 망고향이다. 과육은 물컹하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일관된 맛을 낸다는 점도 소비자들이 샤인머스켓을 찾는 이유다. 일반 청포도와 달리 신맛이 거의 없고 달달한 맛이 강해 '망고포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핑거 푸드의 대표주자로, 선물용으로도 손색없는 고급 과일이 바로 샤인머스켓이다.

하지만 이러한 품질을 유지하려면 고도의 재배 기술이 필요하다. 샤인머스켓은 바람과 빛이 잘 통해야 하고, 밭을 깊게 갈거나 산도를 맞추는 등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씨를 없애는 무핵화 작업과 봉지 씌우기, 물길 정비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인건비가 많이 든다. 나무에 꽃이 피고 130일 이후에 수확해야 하는 긴 재배 기간도 샤인머스켓이 프리미엄 가격에 판매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에서 건너온 청포도, 한국 땅에 뿌리내리다

샤인머스켓은 1988년 일본에서 아키츠21호와 하쿠난을 교배해 개발되었으며, 2006년 품종으로 등록되었다. 이 청포도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도 2006년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재배와 유통은 2014년부터 시작되었다.

샤인머스켓이 한국에서 로열티 없이 재배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국제조약에 따르면 과일 품종의 경우 국내 등록일로부터 6년 이내에 해외 품종 등록을 해야 로열티 징수 권리를 얻을 수 있는데, 일본은 2006년 샤인머스켓을 등록한 후 6년이 지나도록 해외 품종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은 2012년 이후 로열티 없이 재배와 수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이러한 법적 여건이 마련되면서, 한국의 농가들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샤인머스켓 재배에 뛰어들었다. 높은 당도와 아삭한 식감,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편리함은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순식간에 샤인머스켓은 선물용 과일로, 카페 디저트로, 가정의 식탁에 올라가는 프리미엄 과일이 되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리고 달콤한 유혹

샤인머스켓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농가들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7년부터 샤인머스켓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중국 수출이 시작되면서 수익성이 캠벨포도보다 훨씬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경북 상주, 김천, 영천 등 전통적인 포도 재배지를 중심으로 많은 농가들이 기존의 캠벨얼리나 거봉 재배를 샤인머스켓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샤인머스켓 재배 비중은 2017년 전체 포도의 4%에 불과했으나, 2020년 22%, 2022년 41%로 급등했고, 2023년에는 43.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불과 5~6년 만에 샤인머스켓은 한국 포도 재배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수출 성과 역시 눈부셨다. 2017년 한국산 샤인머스켓이 처음 중국에 수출되었고, 대중 포도 수출액은 2017년 82만 달러에서 2019년 558만 달러로 7배나 증가했다. 대만에서는 2022년 220만 달러였던 수출액이 약 4~5배 증가하며, 일본산을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한국산 샤인머스켓은 일본산보다 낮은 가격에 비슷한 품질을 제공하며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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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Grape 샤인머스켓, 미국 식탁까지 넘보다

샤인머스켓의 해외 진출은 중국과 대만을 넘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홍콩 시장에서도 한국산 샤인머스켓은 거봉과 함께 점차 인기를 얻으며 수출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한류 열풍과 제사 문화의 영향으로 최상급 품질의 샤인머스켓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주 지역 농가만 46톤을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2025년, 한국산 샤인머스켓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미국 시장 진출이다. 전남 영암군에서 생산한 샤인머스켓이 미국 수출길에 올랐다. 호남권에서 처음으로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미국 수출검역단지로 지정받은 영암군은 송이마다 당도를 측정해 17 브릭스 이상일 때만 수확하는 엄격한 품질 관리로 6.5톤 규모의 샤인머스켓을 첫 수출했다. 올해 목표는 20만 달러 규모, 총 20톤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한국산 샤인머스켓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 자리 잡은 한인 마트에서는 이미 한국산 샤인머스켓이 판매되고 있으며, 미국산 청포도와 비교해도 뛰어난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산 샤인머스켓은 이제 중국, 베트남, 대만, 홍콩을 넘어 미국 식탁까지 노크하며 명실상부한 'K Grape'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급성장의 그림자, 품질의 딜레마

하지만 급속한 성장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낳았다. 재배면적이 급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 생겼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예전보다 당도가 떨어지고 껍질이 질겨졌다"는 평가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국포도회는 샤인머스켓의 권장 출하 당도를 18 브릭스로 제시하지만, 대형마트는 15~16 브릭스, 식자재마트나 전통시장에서는 13 브릭스 상품도 판매되고 있다. 품질 규격이 당도나 과육 상태가 아닌 무게 중심으로 평가되다 보니, 저품질 제품이 시장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

가격 하락은 필연적이었다. 샤인머스켓 2킬로그램 평균 소매가격은 지난해보다 19.1% 하락했으며, 평년보다 54.6% 싸다. 2020년까지만 해도 2킬로그램 한 상자에 3만 원대에 팔리던 샤인머스켓이 현재는 2만 원대로 떨어졌다. 심지어 거봉이나 캠벨얼리보다도 저렴해진 상황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추석 대목을 맞추려고 충분히 익지 않은 송이를 조기 수확하면서 품질이 더욱 저하되었다. 한때 '과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던 샤인머스켓은 이제 가장 흔한 포도가 되어버렸다. 영천의 경우 도매시장의 샤인머스켓 상품 2킬로그램 평균 가격이 1만 원 이하로 떨어지면서, 일부 포도농가는 수확을 포기하기도 했다.


새로운 도전, 그리고 변화의 모색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다. 한국 농가들과 정부는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저장 기술을 개발하며,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는 데 힘쓰고 있다. 농식품부는 한국포도수출연합, 경북농업기술원과 공동으로 장기저장기술 매뉴얼을 제작해 전국 포도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저장 기간을 3개월에서 5개월로 늘리면서 출하 시기를 분산하고, 수출 단가를 높이는 전략이다.

2025년부터는 호주 수출길도 열렸다. 베트남, 홍콩, 대만, 미국을 넘어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산 개량종인 레드클라렛과 홍주씨들리스도 베트남과 홍콩에 시범 수출되고 있다. 샤인머스켓에만 의존하지 않고, 한국 고유의 품종을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상주의 한 농가는 작목반과 함께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며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수출 경쟁력은 기술에서 나온다"며,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당도가 남부지방보다 낮더라도, 일교차가 큰 기후 덕분에 경도가 단단한 샤인머스켓을 생산하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계속되는 샤인머스켓 이야기

샤인머스켓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급성장과 위기를 겪으며, 한국 농업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단순히 유행하는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품질 관리와 지속 가능한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것이다.

국제 시장에서 한국산 샤인머스켓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일본산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만과 홍콩 등에서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미국 시장 진출은 K Grape의 가능성을 더욱 넓히고 있다. 문제는 내수 시장의 신뢰 회복이다. 소비자들이 다시 샤인머스켓을 찾게 하려면, 엄격한 품질 기준과 투명한 등급 체계가 필요하다.

샤인머스켓이 한국에 뿌리내린 지 약 20년. 이 청포도는 화려한 성공과 뼈아픈 실패를 동시에 경험하며 한국 농업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제 샤인머스켓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무분별한 확장이 아닌 품질 중심의 재편, 국내 시장 회복과 함께 해외 시장의 지속적인 확대, 그리고 우리 고유 품종의 개발이라는 세 가지 과제 앞에 서 있다.

이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샤인머스켓의 미래는 다시 한번 달라질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농가들의 노력과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그리고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모여 샤인머스켓은 다시 한번 한국 과일 산업의 자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더 멀리 날아가기를 기대하며.


https://youtube.com/shorts/9c8NqowkM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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