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축하할 때 스파클링을 터뜨릴까
스파클링 와인이 특별해진 역사
병 입구에서 터져 나오는 거품. 잔 속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작은 기포들. 우리는 이 장면을 '축하'와 함께 기억한다. 스파클링 와인이 없는 우승 세리머니를 상상할 수 있을까. 결혼식 피로연에서 건배주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오늘날 샴페인, 프로세코, 카바는 전 세계에서 축하의 순간을 상징하는 음료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스파클링 와인이 어떻게 '축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지, 그 뒤에 숨겨진 역사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흥미롭다.
왕실의 대관식과 함께 시작된 샴페인
샴페인의 역사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샹파뉴는 496년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1세가 세례를 받은 곳이며, 랭스 대성당에서 987년부터 1825년까지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애초에 이 지역 자체가 '축배의 지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샴페인이 처음부터 기포가 있는 와인은 아니었다. 17세기 샹파뉴 지방의 와인 생산자들은 골칫거리 하나를 안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발효가 멈췄다가 봄이 되면 다시 발효가 시작되면서 병이 폭발하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프랑스 셀러에서는 약 20%의 와인 병이 폭발로 인해 손실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악마의 술'이라고 불렀다.
동 페리뇽, 발명가가 아닌 혁신가
17세기 후반 베네딕토회 수도사 동 피에르 페리뇽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샴페인을 발명했다는 이야기는 신화에 가깝다.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했다는 전설은 그의 후임자였던 동 그루사르가 1821년에 만들어낸 이야기로, 샹파뉴 지역과 교회에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실제로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은 1662년 영국의 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이 왕립학회에 제출한 논문에서 처음 문서화되었다. 페리뇽이 수도원에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그럼에도 페리뇽의 기여는 중요하다. 그는 포도 품종을 블렌딩 하는 기술을 개척했고, 더 튼튼한 유리병을 사용했으며, 코르크 마개를 도입했다. 그는 특히 피노 누아 같은 검은 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압착 기술을 개발했다. 페리뇽은 샴페인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샴페인 제조 방식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인물이었다.
왕실과 귀족이 만든 럭셔리 이미지
샴페인은 루이 15세 치세(1715-1774)에 프랑스 왕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은 1739년 한 파티에서 1,800병의 샴페인을 소비했다고 전해진다.
1890년대 후반 샴페인 생산자들은 벨기에 왕, 그리스 왕, 영국 귀족들이 자사 샴페인을 사랑한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동시에 샴페인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사치품으로 마케팅했고, 20세기 초에는 중산층도 샴페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사브라주와 축하의 전통
나폴레옹 시대에 샴페인과 축하의 연결고리가 더욱 강화되었다. 나폴레옹의 경기병대(후사르)는 승리를 축하할 때 칼로 샴페인 병 목을 잘라내는 사브라주를 선보였다. 나폴레옹은 "나는 이길 때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을 마신다. 그리고 질 때는 위로받기 위해 샴페인을 마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한 전설에 따르면, 27세에 남편의 샴페인 하우스를 물려받은 베브 클리코 부인이 나폴레옹의 장교들을 포도밭에 초대했고, 그들은 부유한 젊은 미망인에게 인상을 주기 위해 칼로 샴페인을 열었다.
서민의 기쁨이 된 프로세코
샴페인이 왕족과 귀족의 음료로 시작했다면, 프로세코는 이탈리아인의 일상과 함께 성장했다. 1868년 이탈리아 북부 코넬리아노의 안토니오 카르페네가 프로세코를 스파클링 와인으로 처음 생산했으며, 이것이 카르페네 말볼티의 시작이었다.
샤르마 방식, 대량생산의 혁신
프로세코는 샴페인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안토니오 카르페네는 화학자이자 과학자로서 파스퇴르, 코흐와 교류하며 샤르마 방식(탱크 방식)을 완성했다. 병에서 2차 발효하는 샴페인과 달리, 대형 압력 탱크에서 2차 발효를 진행하기 때문에 생산 공정이 단순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카르페네의 아들 에틸레는 1924년 처음으로 라벨에 '프로세코'라는 이름을 표기했다. 이것이 프로세코가 고유한 정체성을 갖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벨리니 칵테일과 세계화
1948년 베네치아의 해리스 바 창립자 주세페 치프리아니가 프로세코와 화이트 복숭아 퓌레를 섞은 벨리니 칵테일을 개발했다. 그는 이 칵테일을 15세기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는데, 칵테일의 색깔이 벨리니의 그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벨리니는 프로세코를 축하의 음료에서 일상의 즐거움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프로세코는 급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수출되며, 샴페인의 대안이 아닌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스파클링 와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의 자존심, 카바
스페인의 카바는 샴페인보다 한 세기 늦게 태어났지만, 처음부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1872년 카탈루냐 지역의 조셉 라벤토스 파토가 샴페인 지역을 방문한 후 전통 방식을 적용해 최초의 카바를 생산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품종 대신 스페인 페네데스 지역의 토착 품종인 마카베오, 차렐로, 파렐라다를 사용했다.
샴페인 방식, 스페인 정체성
'카바(Cava)'라는 이름은 카탈루냐어로 '저장고' 또는 '동굴'을 의미한다. 1980년대까지 이 스파클링 와인을 샴파니라 불렀는데, 샴페인 생산자의 반발로 인해 카바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카바는 샴페인과 동일한 전통 방식(병내 2차 발효)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스페인의 따뜻하고 안정적인 기후는 포도를 온전히 성숙시키기 때문에, 카바는 과일 풍미가 풍부하고 향기가 가득하다는 고유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현재 카바는 전 세계 스파클링 와인 생산량의 약 11%를 차지한다. 2021년 기준 약 2억 5천만 병이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 중이다.
세 가지 스파클링, 하나의 상징
샴페인은 왕실과 귀족의 전통에서, 프로세코는 이탈리아의 일상과 사교에서, 카바는 스페인의 자존심에서 각각 출발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축하'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수렴했다.
세 가지 스파클링 와인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기술적 혁신과 마케팅, 그리고 문화적 맥락이 결합되어 특별한 음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샴페인은 왕실 대관식과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 축포를 통해, 프로세코는 이탈리아인의 아페리티보 문화와 벨리니 칵테일을 통해, 카바는 스페인 고유의 정체성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축하'를 상징하게 되었다.
잔 속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기포들. 그 작은 거품 하나하나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파클링 와인 잔을 들 때, 그 기포들이 단순한 탄산이 아니라 왕실의 대관식, 이탈리아 광장의 아페리티보, 스페인 동굴의 숙성고에서 온 '축하의 역사'임을 기억해 보자.
참고 서적 � 조동천 저 《와인, 이야기로 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