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알코올, 디지털 혁신, 더 나은 선택
건강, 경험, 그리고 스마트 와인
2026년 와인 시장은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흥미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 와인 소비량은 감소세를 보이지만, 동시에 와인의 가치와 의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그들은 와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와인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소믈리에, 바이어, 와인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2026년 핵심 트렌드를 살펴보자.
1. 건강한 선택: 로우·노알코올 와인의 부상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로우 알코올과 무알코올 와인의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마시는 방식 자체의 변화다. '제브라 스트라이핑(zebra strip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소비 패턴이 등장했는데, 이는 알코올음료와 무알코올 음료를 번갈아 마시는 것을 말한다. 첫 잔은 무알코올 스파클링으로, 두 번째는 일반 와인으로, 세 번째는 다시 무알코올로 돌아가는 식이다.
글로벌 무알코올 와인 시장은 2025년 28억 4천만 달러에서 2035년 76억 4천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 블룸, 모데라토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초기 무알코올 와인이 맛없는 대체품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진공 증류, 역삼투압 같은 정교한 탈알코올 기술로 와인 본연의 풍미를 살린 고급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가 이 카테고리의 소비자를 구성하고 있으며, 레스토랑과 바에서도 이러한 옵션을 제공하지 않으면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 한 잔의 자유: 싱글 서브 포맷의 다양화
와인병 전체를 열기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을 위해 싱글 서브 와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2025년 약 4억 9천만 달러에서 2035년 6억 8천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스파클링 카테고리에서 눈에 띄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1887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프로세코 생산자 미오네토는 한 잔 분량의 미니병을 출시했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를 기념해 만든 소피아 와인즈는 캔 스파클링 와인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포맷은 피크닉, 야외 활동, 소규모 모임에서 특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와인을 더욱 캐주얼하고 접근하기 쉬운 음료로 만들고 있다. 재활용 가능한 알루미늄 캔, 재밀봉 가능한 미니병 등 혁신적인 패키징이 지속가능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3. 뿌리를 찾아서: 토착 품종의 재발견
그리스,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재배되는 토착 포도 품종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야기가 있고,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와인을 원한다.
토착 품종은 현대적인 입맛에 맞으면서도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독특한 풍미를 제공한다. 신선하고 활기차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개성이 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진정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 트렌드와 맞아떨어진다. 알토 아디제의 알파인 신선함, 피에몬테의 바르베라와 돌체토 같은 덜 알려진 품종들이 소믈리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와인 산업의 다양성이 곧 그 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4. 선택이 아닌 생존: 지속가능성의 필수화
친환경은 더 이상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구매 결정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환경 윤리를 와인 품질의 일부로 본다. 가벼운 유리병, 캔 포맷, 블록체인으로 검증된 원산지까지, 투명성이 곧 신뢰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QR 코드를 스캔하면 프로방스의 햇살 가득한 포도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는지, 포도밭에서 생물다양성이 유지되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유기농 와인 시장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0.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유럽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는 소비자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었다.
5. 새로운 가능성의 땅: 떠오르는 와인 산지
전통적인 와인 명가들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와인 리스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포르투갈이 2026년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빈호 베르데를 넘어서 다웅, 리스보아 지역의 토우리가 나시오날, 카스텔라웅 같은 토착 레드 품종들이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 스테이트,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그리스의 나우싸, 심지어 텍사스까지 새로운 와인 프런티어가 열리고 있다. 알토 아디제의 알파인 신선함, 트사콜리의 짭조름한 풍미, 피에몬테의 바르베라와 돌체토 등 덜 알려진 품종들이 소믈리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가성비와 독특한 개성, 식사와의 완벽한 조화를 제공한다. 소비자들이 '덜 마시되, 더 나은 것을 마신다(drinking less but better)'는 트렌드 속에서, 이러한 신흥 산지들은 품질과 가격 모두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6. 가볍게, 신선하게: 라이트 스타일의 인기
와인 소비의 가장 큰 변화는 더 가볍고 신선한 스타일로의 전환이다. 소비자들은 젊을 때 마실 수 있는 과일 향이 풍부한 레드, 아로마틱 한 해안 화이트, 밝고 활기찬 스파클링 와인을 선호한다.
'칠러블 레드(chillable red)' 카테고리가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보졸레의 가메, 시칠리아의 프라파토, 오스트리아의 츠바이겔트 같은 가볍고 산도 높은 레드 와인을 약간 차갑게 서빙하는 것이다. 이는 화이트와 레드의 중간 지점으로, 로제를 마시던 사람들에게는 더 풍부한 맛을, 레드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상큼함을 제공한다. 로제는 계절상품에서 연중 소비되는 와인으로 진화했으며, 이러한 라이트 스타일의 와인들은 다양한 식사와의 페어링에서도 뛰어난 유연성을 보여준다.
7. 버블의 다양화: 프리미엄 스파클링의 확장
지난 5년간 글라스 와인 리스트의 스파클링은 샴페인과 프로세코가 양분했다. 하지만 2026년에는 프리미엄 카바와 드라이 람브루스코가 그 사이를 메우고 있다. Z세대는 특히 버블을 사랑하며, 스파클링을 식전주가 아닌 하루 종일, 식사와 함께 즐기는 와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카바의 경우 레제르바나 그란 레제르바 등급을 찾아보자. 더 오래 숙성되어 빈티지가 없는 샴페인과 견줄 만한 복잡 미를 제공한다. 람브루스코는 부모 세대가 마시던 달콤한 탄산 와인이 아니다. 현대적인 드라이 스타일은 세련되고 식사와의 페어링이 뛰어나다. 스파클링 와인의 상쾌함과 축제 분위기가 일상 소비로 확장되면서, 이 카테고리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8. 스마트 패키징: AI와 개인화된 경험
2026년의 와이너리는 강력한 DTC(직접 소비자) 모델, AI 기반 CRM, 그리고 소셜미디어 전략이 필수다. 소비자들은 초개인화된 경험을 기대한다. 오늘날의 와인 클럽은 단순한 12병 배송이 아니라 몰입형 브랜드 생태계다.
QR 코드나 NFC 태그를 활용한 스마트 패키징은 소비자를 증강현실 경험으로 연결한다. AI 추천 엔진은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처럼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와인을 제안한다. 와인 교육도 생성형 AI로 혁신되고 있으며, 가상 시음실을 통해 물리적 거리의 제약 없이 와이너리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디지털 마케팅은 고객의 생일과 선호하는 품종을 기억하며, 그들이 스크롤하는 곳에서 만나는 것이 당연해졌다.
9. 속도와 효율성: 케그 와인의 보편화
케그 와인(wine on tap)이 레스토랑과 바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혁신이다. 2025년 케그 와인 시장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통적인 병 서비스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 탭에 연결된 와인은 산소로부터 보호되어 마지막 잔도 첫 잔처럼 신선하며,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품질이 유지된다. 20리터 케그는 약 26~27병에 해당하며, 과도한 따르기, 코르크 오염, 산화로 인한 낭비를 제거한다. 댈러스 기반의 식스티 바인즈(Sixty Vines) 같은 와인 중심 레스토랑 체인은 거의 모든 와인을 케그로 제공하며, 지속가능성을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속도와 효율성 측면에서 바텐더는 더 빠르게 서비스할 수 있고, 고객은 더 빠르게 와인을 받는다.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시대에 완벽한 솔루션이다.
10. 경험의 재정의: 접근성의 프리미엄
와인은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정체성이고, 이야기이며, 의도를 가진 선택이다. 흥미롭게도, 몇 년간의 프리미엄화 추세 속에서도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와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뉴욕의 레이, 스타스 같은 와인바들은 와인을 다시 접근 가능하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스타스는 88달러 이하 88종의 와인을 선보이며, 글라스 와인은 11~19달러로 통일했다.
코라빈 같은 와인 보존 시스템은 병을 열지 않고도 잔 단위로 와인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레스토랑과 바가 더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을 글라스로 제공할 수 있게 만들어, 전체 병을 구매하기 부담스러운 소비자들도 고급 와인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와인 플라이트(tasting flights), 다양한 크기의 포어(pour) 옵션이 인기를 얻으면서, 소비자들은 하나의 와인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와인을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와인 경험은 단순한 소비를 떠나 교육, 탐험, 그리고 공동체 형성의 장이 되고 있다.
2026년 와인 시장은 양이 아닌 질로, 과시가 아닌 진정성으로, 일방적 판매가 아닌 양방향 경험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공하는 브랜드는 가장 크거나, 가장 오래되거나,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곳이 아니다. 가장 관련성 있는 브랜드가 될 것이다. 건강을 생각하고, 경험을 중시하며, 디지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들. 그들이 바로 2026년 와인 시장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들은 단순히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그들은 와인과 함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참고 서적 �《또 한 잔의 와인, 또 한편의 이야기》조동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