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도 우아하게

by 체리봉봉

테니스 레슨은 끝났지만 우리의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 야외 테니스장을 찾아 남편과 두런두런 연습을 한다. 남편이 예약한 시간은 정오가 조금 지난 낮 1시. 초여름의 태양이 가장 강렬할 시간이라 완전 무장을 한다. 선크림도 바르고 모자도 쓰고 자외선 차단 마스크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공휴일이라 셔니까지 따라나섰다. 그간 무관중 경기를 펼치던 우리에게 첫 관중이 생긴 셈이다. 그녀는 경기를 관람하며 먹을 최애 음료 복숭아 아이스티와 과자까지 챙겼다.



얼굴이 빨갛게 익을까 봐 걱정했지만 이따금 구름자락에 해님이 가려 머리 위 커다란 양산이 생겼다. 때마다 쾌청한 바람도 불어주니 테니스 치기 딱 좋은 날이다. 날씨 덕인지 세 코트 모두 사람들로 꽉 찼다. 응원해 줄 관객도 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와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오랜만에 잡은 테니스 라켓도 가볍게 느껴졌다. 가뿐한 몸으로 제대로 스텝을 밟아보겠노라 의지를 다잡았다. 프로 선수라도 된 양 제자리에서 스플릿 스텝과 셔플 스텝을 구현하기도 하고 포핸드와 백핸드 스트로크 자세를 취해 보기도 했다.



남편은 반대편 코트에서 어김없이 공을 던져주었다. 운동 신경이 쳐지는 아내와 테니스를 친 덕분에 그는 볼 머신이 되어 내 발 앞 적당한 공간에 공을 떨어뜨려주었다. 내가 포핸드로 공을 받아 치면 남편도 이때는 힘껏 공을 친다. 여기서부터 경기가 시작되는 셈인데 여지없이 발이 무거운 나는 공을 놓치고 만다. 두 번 이상 랠리가 되지 않는 것도 답답한데 강한 바람에 공은 자꾸 옆 코트로 나가떨어졌다. 바람에 모자도 날아가고 공도 날아가고 연습 시작 전에 다잡았던 나의 의지도 덩달아 날아갔다. 남편은 옆 코트로 빠르게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을 찾아왔다. 괜히 남편 눈치도 보이고 코트 옆 벤치에 앉아 있던 관중의 눈치도 살폈다. 언제부터 집중력을 잃은 건지 셔니는 응원은커녕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오징어 땅콩만 먹고 있었다. 이 날 민망함은 나의 몫이었다.



여자 단식경기는 대개 3세트로 최소 1시간 30분은 진행되는데 우리는 15분 동안 가져간 공을 한 번씩 치고 공을 줍고 잠깐씩 숨을 돌렸다. 역시 이날도 테니스 실력으로 우리가 최하위였다. 우리 공이 날아갔던 옆 2 코트는 남자 단식경기가 진행 중이었고 1 코트에는 혼합 복식경기가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이는 테니스용 선캡 모자를 쓰고 무릎 위 기장의 테니스 치마를 입고 나비처럼 날아다니다가 벌처럼 강렬하게 한 방을 치는 50대 여성이었다. 묵직하고 파워 있는 스트로크와 가벼운 발놀림에서 강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꾸준히 운동을 한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유연하고 탄력 있는 자세였다.



얼마 전 읽었던 사라 카우프먼의 <우아함의 기술>이 떠올랐다. 책의 저자는 운동경기를 최상의 육체의 향연으로 정의하고 육체 측면에서 우아함을 가장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운동선수라고 한 바 있다. 이 책에도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의 우아함에 대해 논한 부분을 더욱 주의 깊게 읽었는데 그가 경기 중 보여준 자세를 묘사하고 극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테니스든 춤이든 걷기든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되고, 움직임도 좋아진다. 많이 움직일수록 움직임도 더 우아해진다는 것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삐걱거리는 몸을 삼겹살로 기름칠할 생각만 했던 나를 반성하며 더 부지런히 움직여 보기로 했다. 살아있는 교과서를 눈앞에서 발견했으니까.

우아하게 테니스 치기. 왕초보의 바람은 날로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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