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파리 (6)

by bonbon

어제 마신 와인 때문인지 머리가 살짝 무거웠지만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쳤다. 목적지는 이번에 파리에 오면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곳, 바로 Shakespeare and Company다.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Movable Feast)'를 읽으며 꼭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속에 새겨놓았던 곳이다. 헤밍웨이가 습작을 위해 파리에서 머문 7년을 회고한 이 책에 Shakespeare and Company가 등장한다.

"지금 수입에 연연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선생님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잖아요."

이곳의 여주인인 실비아가 헤밍웨이에게 보증금 없이 책을 빌려주며 한 말은 가난한 작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헤밍웨이는 이런 실비아를 회상하며 다리가 예쁘고 친절하다고 묘사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코끝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오래된 종이와 나무 냄새. 마치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온 듯,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실비아 비치가 운영했던 서점과는 다른 곳이지만 그녀의 정신이 서점 곳곳에 깃든 느낌이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2층으로 올라선다. 계단에 써놓은 글귀도 서점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환영하는 듯한 느낌이다. 관광객으로, 책을 고르는 사람들로 서점은 붐볐지만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소곤소곤 나누는 작은 말소리가 평온했다.

2층 열린 창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앉아있다. 사람들이 꽤 오가는데도 터줏대감인 듯 앉아있는 걸 보니 저 녀석의 전용석인가 보다.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가져다대니 빤히 노려본다. 피하지 않고 '인간 네가 뭐하는지 보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 보니 연륜이 좀 있는 듯. 천천히 책들을 둘러보며 책장을 넘기다가 헤밍웨이의 책을 한 권 사서 나왔다.


생제르망 거리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 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 Les Deux Magots와 Cafe de Flore가 나온다. 경쟁하듯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이곳은 헤밍웨이, 사르트르와 같은 작가들이 글을 쓰고 쉬기도 했다고 한다. 두 카페는 언제나 사람이 붐벼서 자리잡기가 수월하지 않다는데 이 날은 운 좋게 야외에 빈 테이블이 좀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마주 보고 앉아 있어야 해서 좀 힘들었지만, 오래 걸었던 터라 앉을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내 눈엔 이상하게만 보였던 파리의 카페다. 길을 바라보고 앉도록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된 노천카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햇빛을 받으며, 무엇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과 닿을 듯 말 듯 앉아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들. 그리고 옆자리 사람들과 팔꿈치가 닿을 듯 가까운 테이블 간격. 이후에도 몇 번 파리를 오가며 이러한 풍경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러한 이유는 아직 궁금하긴 하다.

그렇게 멍 때리다 보니 슬슬 허기가 느껴진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쪽으로 동선을 잡으면서 찜해두었던 레스토랑, Le Relais de L'Entrecote로 갈 시간이다. 지극히 파리스러운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는 리뷰에 내심 궁금해하던 참이다. 런치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가니 아직 테이블을 정리하는 중. 한두 팀 정도가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파리지앵은 아닌 것 같고, 저들도 구글 리뷰를 보고 찾아온 관광객인 듯싶다.

식전 바게트와 본식이 바로 서브된다. 스테이크를 써는데 와인이 빠질 수 없지. 하우스 레드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감자튀김과 정체모를 소스에 잠긴 스테이크가 나왔다. 뉴욕이나 이탈리아에서 먹던 스테이크와는 사뭇 그림이 다르다. 두께는 상대적으로 얇았지만 굽기는 적당했고, 소스가 감칠맛 났다. 고기의 질이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소스가 열 일 한 느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계속 리필이 된다는 점이다. 일행이 있었다면 더 시켰을 텐데, 내 양에는 한 접시면 충분했다.


덥고, 많이 걸었고, 배고파 허겁지겁 먹은 고기와 와인에 얼굴이 발그레 열이 올랐다. 낮 와인은 이래서 무섭다. 몸이 노곤해지니 그냥 숙소에 가서 쉬고 싶은 느낌. 그때 톡이 왔다.

"잠시 후 봐~"

오랜만에 보는데 술 취해 헤롱대는 모습을 보일 순 없지. 급한 대로 차가운 물 잔을 볼에 대며 열을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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