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파리 (7)

by bonbon

대충 추스르고 팔레 루아얄로 방향을 잡았다. 구글맵으로 찍어보니 걸어서 20분, 슬슬 걸어가야겠다. 배도 부르고 살짝 남은 술기운에 센 강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파리 풍경에 취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리고 강 건너, 이 파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사뭇 설렜다.


팔레 루아얄은 여전했다. 고풍스러운 건물을 배경으로 들쑥날쑥 올라와 있는 스트라이프 조형물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며 묘하게 어우러진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저 조형물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물론 나도 기꺼이 동참했다.

팔레 루아얄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공원이 나온다. 단정하게 정리된 팔레 루아얄 가든이나 뛸르히 가든을 보면, 이게 파리의 공원이구나, 하게 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브라이언트 파크, 또 런던 하이드파크와는 참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상대적으로 아담하지만 디테일하게 가꿔진 정원이랄까. 조경은 잘 모르지만 보고 느낀 바로는 그렇다. 키 큰 나무들이 만들어준 그늘 사이로 들어가면 햇볕이 쨍한 밖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걷느라 가빠진 숨을 이곳 벤치에서 잠시 고른다.

팔레 루아얄 가든으로 오면 또 하나 좋은 건, 카페 키츠네가 있다. 키츠네의 맛챠 라테는 딱 그 맛이다. 내가 알고 네가 아는 그 맛. 그래서 반갑다. 목마르니 아이스로 주문했다. 이 당시 파리에서 제대로 된 아이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페이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 정원을 바라보고 늘어선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니 몇몇 파리지앵, 그리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한 귀퉁이에 그가 앉아 특유의 나른한 자세로 맥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부러 부르지 않고 살그머니 다가갔다. 테이블에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순간 고개가 들리고 눈이 마주친다.

빙긋 웃는 입가. 오랜만이네, 저 웃음.

"이제 오는 거야?"

마치 어제 보고 오늘 보는 듯 아무렇지도 않고 건네는 한마디.

"응, 좀 걷다 왔어."

나도 마찬가지. 4년 전에도 우린 이랬었지.


"이렇게 밖에서 땡땡이쳐도 되는 거야?"

타박하듯 건넨 말에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안 나올 수 없지"

저렇게 유들유들 넘어간다.

알고 보니 내 갑작스러운 연락에 일정을 조정했다고.


여전했다.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매너, 그리고 적당한 선.

어떻게 보면 깔끔하고, 어떻게 보면 좀 얄미운,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이별을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이유가 됐던 그의 이런 '적당함'이, 이국 땅에 상처 입은 채 도망 온 내겐 이제는 다행이라 느껴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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